(서울=연합인포맥스) 태문영 기자 = 일본 최대 LCD 업체 샤프와 대만 혼하이(鴻海) 정밀공업의 제휴는 일본 제조업체들의 상황이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주는 동시에 업계 서열이 바뀜을 드러낸다는 진단이 나왔다.

샤프는 27일 LCD 패널 분야 제휴를 위해 669억엔(미화 8억800만달러) 규모의 주식 1억2천100만주를 발행해 혼하이 측에 넘겨주기로 했다.

혼하이는 샤프 전자의 주식 9.871%를 보유하면서 최대주주 자리에 오르게 됐다.

이번 제휴로 혼하이는 일본 서부 사카이의 샤프 LCD 공장에서 생산되는 TV용 제품의 약 절반을 매입한다.

이 과정에서 테리 궈 혼하이그룹 회장은 샤프의 사카이 공장 지분 92.96% 중 절반인 46.5%를 매입하기로 했다.

샤프는 이번 제휴로 활로를 모색하고자 한다.

올해 샤프는 LCD 부문에서만 수십억달러의 손실을 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자금 조달에 대한 투자자들의 우려가 깊어지면서 샤프의 주가는 올해 들어 26% 하락했다.

다음 달 대표직에 오르는 오쿠다 다카시(田隆司) 현 샤프 이사는 "우리 힘만으로 모든 일을 하려 했지만, 경영 환경이 어렵다"고 우려했다.

샤프가 무려 1조엔을 투입한 사카이 LCD 공장은 샤프가 고전하는 원인 중 하나다.

대형 LCD 패널에 대한 수요는 일본 TV 판매가 위축되면서 줄어들었다.

사카이 공장은 최첨단 생산 기술을 갖췄지만, 재고가 쌓이면서 결국 지난달부터 오는 9월까지 생산시설의 절반만 가동하기로 했다.

샤프는 이번 제휴를 통해 안정적인 수요를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반면에 혼하이는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기업이다.

혼하이는 중국에서 애플 기기를 생산하는 세계 최대 위탁생산(OEM)업체 팍스콘의 모회사이기도 하다. 소니와 닌텐도에도 부품을 납품한다.

작년 회계연도에만 1천170억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이번 제휴로 혼하이는 대주주가 되는 동시에 샤프로부터 LCD부문 기술 제휴를 받기로 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샤프와 혼하이의 제휴가 한때 일본 기업들이 지배했던 전자업계에서 힘의 균형이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진단했다.

일본 업체들은 디자인과 생산까지 모든 공정을 다루는 수직 통합형 제조업의 전형을 보여줬다.

그러나 혼하이와 같이 값싼 노동력으로 무장한 제조업체가 등장하면서 애플처럼 공장이 없어도 디자인과 마케팅, 공급망 관리만을 하는 전자제품 기업이 늘어났다.

제조업에 쇠퇴하면서 일본 기업들은 자국 내 기업들과의 합작이나 분리 등의 방식으로 해결책을 찾았다.

이는 다른 아시아 국가의 업체와 손을 잡았을 때의 기술 유출을 우려한 결정이었지만, 결과는 시원찮았다.

전문가들은 이번 제휴로 두 업체가 애플과 거래할 때 입지가 강화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샤프는 높은 기술력에도 최근 엔고현상과 한국 경쟁업체들에 밀려 막대한 손실을 입어왔고, 혼하이 산하 LCD 디스플레이 제조사인 치메이 이노룩스는 기술력이 부족하고 실적 부진으로 고전하고 있다.

미즈호증권의 구라하시 노부오 애널리스트는 "혼하이가 사카이 공장에서 생산되는 LCD 패널 절반을 매입하기로 하면서 막대한 감가상각 우려는 대부분 사라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리서치업체의 애널리스트는 "삼성이라는 강력한 경쟁자 때문에 혼하이와 샤프의 동맹을 불가피해 보인다"며 "대만 LCD 제조업체들은 10년 전 일본에서 기술을 들여왔다. 이번 제휴는 대만과 일본 간의 두 번째 협력에 시동을 걸 것"이라고 설명했다.

myt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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