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개편에 꼼수ㆍ로비전까지



(서울=연합인포맥스) 김성진 기자 = 월스트리트의 글로벌 금융기관들이 올해 시행을 앞둔 '볼커룰'에 대응하기 위해 갖가지 방안을 동원하고 있다.

볼커룰의 핵심 규제 대상인 사업부를 아예 폐쇄하는 것은 물론 새로운 먹을거리를 찾기 위한 움직임도 부산하다.

금융권 개혁법안인 '도드-프랭크법'의 적용을 피하려고 스스로 은행 면허를 반납하는 경우까지 나왔다.

볼커룰은 이 법안 가운데 하나로, 은행들이 자기자본을 이용해 주식, 채권, 파생상품 등에 투자하는 '프랍 트레이딩(자기자본거래)'을 제한하는 내용이 골자다.

지난해 10월 볼커룰 초안이 공개된 뒤로는 법안 완화를 위해 의회를 상대로 한 대형 투자은행(IB)들의 로비전도 달아오르는 양상이다.



▲잇단 프랍팀 폐쇄 등 사업개편 = IB들이 지금까지 가장 많이 택한 방법은 프랍 트레이딩 사업의 포기다.

IB들은 볼커룰 도입이 지난 2010년 7월 발표되고 나서부터 프랍 트레이딩 사업의 조정에 대해 고민해 왔다.

일각에서는 프랍팀을 자회사로 따로 독립시키는 방법도 고려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프랍팀의 폐쇄가 큰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JP모건은 가장 발 빠르게 움직여 볼커룰이 발표되고 두 달이 채 되지 않아 상품투자 프랍팀을 폐쇄키로 했다.

골드만삭스도 뒤를 이어 주식과 채권 부문 프랍팀의 문을 닫기로 했다.

씨티그룹은 지난해 10월 프랍 트레이딩 사업부 폐쇄를 발표한 바 있다.

이런 가운데 골드만삭스는 다른 수익처를 개발하기 위해 가장 활발하게 대안을 마련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전통적으로 프랍 트레이딩의 매출 비중이 큰 탓에 볼커룰 시행으로 월가에서 가장 큰 타격을 받을 회사로 꼽혀 왔었다.

이 회사는 최근 채권보증(모노라인, monoline) 사업 진출을 검토하고, 최대 수익처 가운데 하나인 FICC(Fixed income, Currencies and Commodities) 사업에 전자트레이딩(electronic trading) 도입을 추진하는 등 새로운 실험을 꾀하고 있다.

또 버뮤다 소재 재보험사 애리얼 홀딩스(Ariel Holdings)를 인수키로 하면서 보험업도 확대하고 있다.

규제 강화에 따른 매출 감소를 만회하기 위한 전략이다.



▲규제 피하려 은행면허 포기 '꼼수' = 도이체방크는 미국 내 은행지주회사 타우누스가 도드-프랭크법으로 자기자본을 약 200억달러 이상 확충해야 하게 될 처지에 놓이자 지난달 1일자로 계열사의 구조를 변경해 은행지주 지위를 없앴다.

도이체방크는 타우누스가 보유한 신탁회사를 분리하고, 미국에서 법적으론 은행으로 분류되지 않는 IB 부문만 남겨 자기자본 요건을 충족할 필요가 없도록 했다.

타우누스는 10여년 전 연방준비제도(Fed)가 허용한 면제 조항의 혜택을 보고 있었지만, 도드-프랭크법으로 자산 규모 3천540억달러의 대형은행에 속하게 돼 미국의 자기자본 요건을 충족해야 할 의무를 안게 됐다.

규제를 회피하려고 스스로 은행 면허를 포기한 술수를 부린 셈이다.

도이체방크뿐 아니라 미국 시장에 진출한 여러 유럽계 대형 은행들이 비슷한 방법을 택했다.

바클레이즈는 지난 2010년 미국 법인의 은행 면허를 포기했고, HSBC와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 등도 신탁회사 규모를 줄여 자본확충 부담을 피한 것으로 전해졌다.

외국계 은행들이 이런 식으로 규제를 회피하면 또다시 금융위기가 터졌을 때 미국 정부의 부담이 커질 가능성이 크다.

미국 내 계열사가 부실해질 경우 외국계 은행이 적극적인 구제에 나설지를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셰일라 베어 전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의장은 "오랜 경험상 회사가 어려움에 부닥치면 외국계 은행이나 외국 규제 당국은 미국 계열사를 지원하기 위한 자본 투입을 꺼린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Fed의 대니얼 타룰로 이사는 도이체방크의 계열사 구조 변경에 대해 대응을 할 수도 있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로비전도 치열…도입 연기 전망 나와 = 미국 금융당국은 볼커룰 초안을 공개하면서 올해 1월 13일까지 업계의 의견을 접수하기로 했다.

그러나 초안 공개 후 법안을 완화해야 한다는 반발이 거세지면서 의견 수렴 시한을 지난달 13일까지 한달 늦춰야 했다.

월가는 골드만삭스와 JP모건, 크레디트스위스(CS) 등을 중심으로 의원들을 상대로 한 로비에 열을 올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막강한 자금력을 이용해 정치자금을 제공하고, 볼커룰의 부작용을 부각시키는 설득 작업에 나서고 있다.

한 사례로 CS는 지난달 초 뉴욕 사무소에서 민주당 의원들을 대상으로 볼커룰에 대한 프레젠테이션 자리를 마련했다.

이 모임 이후 2주가 채 지나지 않아 26명의 민주당 의원들이 당국 앞으로 보내는 "수백만의 교사와 경찰관, 노동자들이 은퇴 후 편한 삶을 누리려면 시장이 유연하고 거래비용이 낮아야 한다"는 내용의 서한에 새로 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볼커룰이 금융기관들의 시장 조성 기능을 저해한다는 월가의 주장이 어느 정도 힘을 발휘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의 소비자운동단체 '퍼블릭 시티즌(Public Citizen)'은 볼커룰에 대한 입장 차이에 따라 의원들이 금융권에서 받은 후원액수가 달라졌다는 조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이 단체에 따르면 지난 2010년 이래 볼커룰 완화를 지지하는 의원들은 금융권에서 평균 38만8천10달러의 후원금을 받았다.

볼커룰 강화를 지자하는 의원들이 받은 9만6천897달러보다 네 배 이상 많은 금액이다.

월가는 연구 용역을 줘 볼커룰 반박 논리를 개발, 여론을 통해 확산시키는 방법도 쓰고 있다.

지난 1월 세계적인 컨설팅업체 올리버와이만이 내놓은 보고서가 바로 그런 경우다.

올리버와이만은 볼커룰로 금융시장의 유동성이 크게 위축돼 회사채 시장 투자자들이 최대 3천150억달러의 손실을 볼 수도 있다는 계산을 내놨다.

이 연구는 월가 최대 로비 단체인 증권산업금융시장협회(SIFMA)의 의뢰로 수행된 것이었다.

다각도로 펼쳐지는 월가의 로비전으로 미국 의회 안팎에서는 볼커룰 시행이 애초 예정된 7월을 넘길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지난주 미 상원의원 6명은 도드-프랭크법안 시행 연기를 공식 주장하고 나섰다.

벤 버냉키 Fed 의장은 지난달 말 의회에 나와 볼커룰이 애초 예정대로 시행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sjkim2@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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