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 나폴레옹이 몰락한 계기는 러시아 원정 실패다. 나폴레옹은 유럽연합군을 편성해 모스크바까지 점령했으나 추위와 질병을 이기지 못하고 퇴각하고 만다. 당시 러시아가 활용한 작전은 공성계(空城計)다. 러시아 사령부는 파죽지세의 나폴레옹군과 맞서 싸우지 않고 모스크바를 비우고 피신했다. 강한 상대와 싸워 힘을 빼지 않고, 적이 지칠 때까지 기다려 러시아는 나폴레옹을 쫓아냈다.

#. 러시아는 1904년 한 수 아래로 여기던 일본과의 전쟁에서 패했다. 기습 공격에 대비하지 못했고 나라가 내분에 빠졌기 때문이다. 일본은 선전포고도 없이 러시아 함대를 기습공격해 혼비백산에 빠뜨렸다. 게다가 러시아는 본국 군대 내부의 부패 문제가 불거져 전함 포테킨의 수병 반란이 벌어지는 등 극동지역의 전쟁에 힘을 쏟을 여력이 없었다. 전쟁이 벌어지는 도중에 러시아 혁명의 발단이 된 '피의 일요일(노동자 학살)' 사건이 벌어진다. 차르(러시아 황제)는 몰락하고 러시아는 10년 이상 혁명의 소용돌이에 빠진다.



러시아는 현재 21세기 신 경제전쟁의 중심에 서 있다. 유가하락이라는 기습공격을 받고 경제가 휘청거리고 있다. '차르' 블라디미르 푸틴을 벼랑 끝으로 내몬 미국과 서방이 승리할 것인지, 이에 맞선 러시아의 버티기 전략에 성공할 것인지 관심사다. 나폴레옹을 쫓아낸 영광의 역사를 재현할지, 극심한 혼란에 빠진 러.일 전쟁의 전철을 밟을지 주목된다.

◆공격의 기술:아프고 약한 부위를 집중 공격하라

러시아 경제가 최대 위기다. 유가 하락으로 경제의 기둥인 석유산업이 휘청거리고 루블화 추락으로 대외신인도가 떨어지고 있다. 러시아 최대 석유재벌인 로즈네프트는 유동성 위기에 빠졌다.

경제위기는 푸틴 정권에 치명적이다. 푸틴의 지지도가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1998년 발생한 모라토리엄 때 보리스 옐친 대통령은 인기가 급격히 추락했고 푸틴에게 정권을 넘기고 말았다. 독선적인 국정운영으로 비판받는 푸틴에게 경제위기는 곧 정권의 위기를 뜻한다. 이런 점을 잘 아는 미국은 유가하락 국면을 최대한 활용해 러시아를 압박하고 있다. 상대의 약한부위를 집중공략하는 것이다. 미국은 지난주 러시아의 돈줄인 석유 기업과 국영 방산기업에 제재를 단행했다. 러시아 천연가스회사 가즈포름은 해외투자가 차단될 운명에 처했다. 정보전과 심리전도 병행하고 있다. 푸틴 때문에 경제위기를 맞고 있다는 선전전을 펼쳐 내분을 일으키려는 것이다. 외신에 따르면, 러시아 정치권에선 현재 경제팀을 교체하라는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러시아 재벌집단인 올리가르흐와 푸틴의 갈등설도확산하고 있다. 푸틴의 지도력 붕괴, 경제모델 실패 등 국제여론이 연일 들끓는 중이다. 서방측은 우크라이나에서 철수하면 이 모든 위기에서 벗어날 것이라는말을 흘려 심리전을 펼치고 있다.

◆수비의 기술: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러시아의 방어전략은 기본적으로 버티기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주 4시간 여에 걸친 기자회견에서 "2년 내 경제회복"을 말했다. 다른 말로 러시아가 최대 2년까지는 버틸 수 있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러시아는 이를 위한 준비도 해놓았다. 석유로 벌어들인 외화를 국부펀드와 적립금 형태로 비축해 저유가 시대에 대비한 것이다. 외환보유액은 4천억달러다. 모라토리엄을 선언한 1998년 당시 외환보유액은 200억달러 수준이었다. 1998년과 2014년이 기본적으로 다른 부분이다. 러시아가 내년까지 갚아야할 외채는 1천300억~1천600억달러로 추산된다. 당장은 버틸만한 힘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98년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고 대비책을 마련해둔 것이다.

외환보유액을 외환시장 개입에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도 주목할 만 하다. 1998년의 실패는 환율방어에 외환보유액을 소진한때문이다. 힘을 비축하는 전략적 접근으로 해석된다. 추가 환율위기에는 환시장 개입보다는 자본통제 등의 방법을 쓸 것으로 예상된다. 버티기의 바탕은 내부 단합이다. 푸틴은 기자회견에서 "적절하게 대응했다"며 현재 경제팀에 힘을 실어줬다. 늑장대응으로 비판받는 엘비라 나비울리나 중앙은행 총재의 체면도 살렸다. 러시아의 우먼파워를 상징하는 그녀는 정치권에서 '역적'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입지가 위태로운 상태다. 블라디미르 예브투센코프 AFK 시스테마 회장을 가택연금에서 해제해 올리가르흐(재벌)에 우호적인 손짓을 보냈다. 푸틴은 기자회견에서 현재 경제위기를 외부요인으로 돌렸고 우크라이나의 사태 칙임 역시 서방국가에 전가했다. 위기의 원인을 외세로 돌리고, 내부의 단합을 꾀하려는 포석이다.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위상이 약화되는 가운데 푸틴은 '강한 러시아'의 재건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의 부상(rise of China)과 '강한 러시아'의 출현, 슈퍼파워 미국의 약화로 세계질서가 다극화 시대를 맞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가 경제위기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다극화는 헛된 꿈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러시아가 이번 위기를 어떻게 넘기느냐는 세계질서의 재편에 큰 분수령이다.

(국제경제부장)

(서울=연합인포맥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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