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단, '조건부 訴 취하' 제안

오릭스, 실트론 지분 인수 급물살 가능성



(서울=연합인포맥스) 한재영 기자 = 사상 초유의 사모투자펀드(PEF) 인수금융 디폴트를 초래했던 'LG실트론 사태'가 채권단의 중재에 새로운 국면을 맞을지 주목된다.

인수금융 디폴트로 보고펀드가 내놓은 실트론 지분 29.4%의 처분권을 가진 채권단이 LG그룹과 보고펀드의 맞소송 뿐 아니라 지분 매각까지 동시에 타결짓기 위한 '조건부 중재안'을 내놓고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어서다.

보고펀드가 채권단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한 가운데 LG그룹의 결정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채권단은 '실트론 지분 29.4%를 인수하려는 오릭스PE와 최대주주인 LG 사이에 주주간계약이 체결되면 LG그룹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을 취하하라'는 내용이 담긴 공문을 보고펀드에 보냈다.

오릭스PE는 채권단이 처분권을 가진 실트론 지분을 인수하기 위해 협상을 벌이고 있는데 인수 시점부터 3년 이내에 실트론의 기업공개(IPO)를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LG그룹이 주주간 계약을 통해 명문화 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향후 투자금을 원활하게 회수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 줄 것을 요구한 것이다.

그러나 LG그룹은 오릭스의 요구에 대해 그간 난색을 보여왔다. 인수금융에서 디폴트가 발생한 것이 LG그룹이 IPO 추진을 막았다고 주장하면서 보고펀드가 소송을 제기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LG그룹은 보고펀드의 주장이 '터무니없다'고 맞서고 있는 상황에서 또 다른 투자자와 IPO 추진을 받아들이는 주주간 계약을 맺는 게 부담이 될 수 있다.

이렇듯 상황이 꼬여가자 채권단이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채권단이 보고펀드에 공문을 보낸 것도 꼬여있는 상황을 풀기 위해서는 보고펀드와의 문제부터 해결할 필요가 있어서다.

일단 보고펀드는 채권단이 제시한 '조건부 중재안'에 대해 찬성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LG그룹이 오릭스와의 주주간 계약에 IPO 추진을 명시하면 소송을 모두 취하하겠다는 것이다. 채권단은 이러한 사실을 LG그룹에도 전달했다. 공은 LG그룹으로 넘어갔다.

LG그룹은 일단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이고 있으나 미묘한 태도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LG그룹 고위 관계자는 "주주간 계약을 체결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면서도 "채권단의 중재 노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LG그룹은 소송이 장기화하는 것에 대한 적잖은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총수가 소송의 당사자가 된 것도 부담이다.

보고펀드는 지난 7월 구본무 LG그룹 회장과 ㈜LG 임원 등을 상대로 실트론 상장 절차 중단으로 손해가 발생했다며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LG그룹도 즉각적으로 보고펀드와 변양호 대표를 상대로 '배임 강요 및 허위사실 유포에 따른 명예훼손' 혐의로 서울지법에 맞소송을 제기했다.

LG그룹도 채권단의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실트론 지분 매각은 급물살을 타게 될 것으로 보인다.

채권단 관계자는 "LG그룹이 대의적인 차원에서 나서주길 기대하고 있다"면서 "오릭스PE와 주주간 계약 체결을 통해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만들어 주길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LG그룹 고위 관계자도 "채권단 등 금융권이 실트론 지분을 떠안아 손실이 발생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우려하고 있다"며 "채권단의 노력을 평가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LG그룹 내부에서는 자신들이 보유한 경영권 지분 51% 이외의 지분 처리와 관련해서는 채권단과 보고펀드, 오릭스PE 등이 알아서 해결해야 할 사안이라는 의견도 있다.

jyh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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