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새해 벽두부터 치열한 환율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선전 포고는 유럽에서 나왔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천문학적인 돈을 풀어 경기를 부양하기로 결정했다. 유로화를 시중에 풀면 유로화 가치가 떨어져 주변국에 악영향을 주게 된다. 덴마크와 스위스 등이 영향에서 벗어나기 위해 금리를 내리고 환율방어를 중단하는 등 적극적으로 맞대응하고 있다.

미국의 이웃 캐나다와 신흥국의 인도도 기준금리를 내려 디플레이션 우려에 대응하고 있다. 환율전쟁이 세계화되는 분위기다. 일본과 중국 등 아시아 국가도 예외는 아니다. 이들이 유럽의 선제공격에 어떻게 방어 태세를 취할지 주목된다. 엔화 가치를 떨어뜨려 수출경쟁력을 확보하려는 일본은 추가로 돈을 더 풀 것을 고민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자제하던 유럽이 전격적으로 돈을 풀면서 상대적인 엔화가치 상승이 예상되므로 일본도 추가 대응책을 모색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일본은행 총재는 지난주 다보스포럼에서 중앙은행의 추가 양적완화에 대해 기술적인 한계는 없다고 말했다. 새로운 형태의 통화정책을 고민해야 한다고도 했다.국채 말고도 다른 자산을 매입해 돈을 풀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중국은 달러-위안 기준환율을 올려(위안화 가치 하락) 유럽의 돈 풀기에 대응하고 있다. 환율전쟁의 총성이 중국 대륙에도 상륙하는 모양새다. 그 전에도 중국은 디플레이션 방어를 명목으로 금리를 인하하고 시중 유동성 공급을 확대하는 등 글로벌 충격 대비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유럽의 돈 풀기는 우리나라에게 명암이 교차하는 정책이다. 유럽에서 풀린 돈이 몰려들면 금융시장의 수급 개선에 도움이 될 것이다. 주식시장과 채권시장에 든든한 원군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유럽의 정책이 일본을 자극해 엔저 정책에 박차를 가한다면 우리 경제엔 악재가 될 것이다.

외국계 증권사 HSBC는 최근 한국의 성장률 둔화는 엔저의 영향이 컸다고 지적했다. 엔화 약세를 의식해 한국의 수출기업들이 단가를 내렸고, 그 영향으로 기업들의 이익이 줄어 경제성장률을 떨어뜨렸다는 것이다. 일본 기업들의 수출단가 인하는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단행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우리 경제환경은 그만큼 더 어려워질 것이다.

환율전쟁의 본질은 내가 살기 위해 이웃은 신경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8개국)이 환율에 손을 대 경제살리기를 추진하자 유로존에 가입되지 않은 스위스와 덴마크가 민첩하게 반응하는 것도 이웃나라 때문에 내가 죽지 않기 위한 것이다.

우리에게 가장 위협은 일본이다. 엔저 공세에 기업들의 체질이 약화될 것이 우려된다. 이웃나라 죽이기(beggar my neighbor policy)에 희생되지 않으려면 시의적절한 대응이 필요하다. 변화된 환율 환경에 적응할 기업들의 체질개선이 필요하고, 환율전쟁의 부작용을 억제할 정부차원의 대책마련도 시급하다.

우리는 이제 환율전쟁의 장기화에 대비해야 한다. 유럽이 뛰어들면서 환율전쟁이 장기화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미국이 2009년 금융위기 때 달러를 푼 이후 일본과 유럽이 뒤따르며 7년 이상 환율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유럽이 1~2년간 돈을 풀고, 일본이 양적완화 규모를 확대하게 되면 최대 10년간 환율전쟁이 벌어지는 셈이다.

(국제경제부장)

(서울=연합인포맥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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