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열매 현대증권 건설 애널리스트

(서울=연합인포맥스) 변명섭 기자 = 지난 2008년 금융위기 때 이야기다.

김열매 연구원은 당시 건설담당 애널리스트로서 업계에 발을 내디뎠다. 2008년은 미국발 금융위기가 시작되고 건설 거품이 한순간에 무너지던 시절이다.

김 연구원은 13일 연합인포맥스와의 인터뷰에서 당시를 회고했다.

그는 "2008년 9월 건설 애널리스트가 되고 첫 출근을 하지마자 미국발 금융위기가 닥쳐 건설업이 그야말로 엉망이 됐다"며 "건설업종이 업종 하한가를 이틀 연속 기록하는데 건설업 주가라는게 원래 이렇게 움직이는 줄 알았다"고 웃으며 말했다.

지금은 웃을 수 있지만, 당시에는 개인적으로도 상황 자체가 심각했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전세계를 휩쓸면서 출근한 지 한 달 만에 구조조정을 겪게 된 것이다. 삼성물산을 나와서 금융을 배우고 싶어 경영컨설팅 분야로 이직을 했고 다시 애널리스트로 변신하자마자 겪는 인생 최대의 위기였다.

김 연구원은 구조조정으로 회사를 나가게 된 시점에서 건설업종 분석 리포트라도 하나 써봐야겠다는 생각으로 다른 사람들이 짐을 싸고 있을 때 밤을 새워가며 건설업종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당시 김 연구원은 업계에 첫발을 내디딘 증권사에서 3개월 만에 퇴사했지만, 리포트 하나는 남기고 떠나게 됐다. 그가 남긴 리포트의 발간일은 증권사 퇴사일과 같은 12월1일이었다. 그는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어 리포트를 그대로 박스채 들고 회사를 나왔다.

남들이 포기하려는 순간에도 끝까지 해본다는 '악바리' 근성이 남긴 유물이 바로 그의 첫 리포트다.

회사에서 반강제적으로 쫓겨난 이후 밥벌이를 해야 해 다시 애널리스트가 되기 이전 직장으로 복귀했는데 건설업종은 더욱 힘들어지고 업무 부하는 회사를 떠나기 전보다 훨씬 많아져 있었다.

애널리스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김 연구원은 자신을 지금에 있게 해준 하이투자증권과 2009년 인연을 맺게 된다.

김 연구원은 "다시 배운다는 심정으로 건설사를 끊임없이 공부하고 리포트를 정말 열심히 썼다"며 "현대건설 탐방을 일주일에 3번씩 가고 그러니 업계에서는 건설사에 대해 물어보려면 김열매한테 가라고 소문이 났다"고 전했다.

업계에 소문이 나니 베스트 애널리스트에도 선정이 되고 이곳저곳에서 열심히 하는 애널리스트라고 인정받게 됐다.

증권사에 다시 입사해 1년도 안돼 주요 경제지에서 베스트 애널리스트로 선정되며 건설업종 최고의 스타로 떠올랐다.

김 연구원은 "다행스럽게도 2009년과 2010년 건설업이 다시 살아나는 기미가 보였고 쉴 새 없이 뛰어다녔더니 좋은 결과가 나왔다"며 "아마도 2010년이 인생에서 가장 열심히 하고 성과도 그만큼 났던 최고의 해가 아니었나 싶다"고 말했다.

이름이 알려지자 지금의 현대증권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오고 좋은 조건으로 이직을 하게 돼 현재에 이른다.

건축학과를 나와 2003년 당시 국내 최고라는 삼성물산에 입사한 이후 2006년 이직해 경영컨설팅 전문가로 변신한 후 2008년 애널리스트로 첫 발을 내디뎌 리포트 하나 쓴 게 전부였던 그가 지금은 최고의 건설업종 애널리스트가 됐다.

아직도 늘 부족함을 느낀다는 그는 최근 미국에 직접 다녀와 자원개발 상황을 몸소 체험하고 왔다.

김 연구원은 "지난 2개월 동안은 미국 자원개발에 대해 심도 있게 공부하고 나 자신을 다시 되돌아보게 된 시간이 됐다"며 "이제 다시 건설업을 열심히 배우는 자세로 임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건설업종 애널리스트답게 현재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에 대한 전망을 덧붙였다.

김 연구원은 "강남은 미국의 뉴욕, 일본의 도쿄 같은 곳"이라며 "재건축 이슈와 함께 강남불패는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이런 말을 할 때면 내가 부동산 투기를 부추기는 것이라고 오해를 받을 수 있지만, 부동산 경기가 살아나 일자리가 늘고 경제의 활력소가 된다면 좋은 일 아니겠냐"고 말했다.

msby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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