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한국 정부의 대외정책 키워드는 '경제는 중국, 안보는 미국'이다. 중국과의 경제적 연관성이 커졌기 때문에 중국과 유대관계를 강화하고 한반도 지정학적 여건을 고려해 미국과는 안보 동맹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G2의 한 축으로 떠오른 중국과 전통의 강대국 미국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하는 우리로선 어쩔 수 없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전략인 듯싶다. 그러나 강대국들이 우리의 바람대로 움직이지는 않는다는 징후가 계속 드러나고 있다. 특히 경제문제와 관련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우리 이익을 지키기 쉽지 않다는 현실적인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지난주 공개된 미국 재무부의 환율보고서가 단적인 예다. 미국은 작년부터 한국의 환율정책에 대한 비판을 강화하고 있다. 유럽과 일본 등 천문학적으로 돈을 풀어 환율에 개입하는 나라엔 관대한 반면, 비교적 신중하게 환율 문제에 접근하는 우리나라에는 거친 단어를 동원하고 있다.

미국은 이번 보고서에 재무부가 한국에 개입을 강화했다(Treasury has intensified its engagement with Korea on these issues.)는 문구를 새로 넣었다. 우호적 한미 관계를 고려하면 매우 자극적인 표현이다. 외신들은 환율보고서에 대해 '한국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가혹한 용어를 동원했다"고 평가했다. 한국에 대한 미국의 환율보고서가 날이 갈수록 거칠어지는 건 다분히 한-중 밀월관계를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환율보고서에서 외환시장 개입을 문제삼고 환율절상을 명시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나라는 한국과 중국 두 나라 뿐이라는 점도 그렇다. 지금의 추세라면 오는 10월에 나올 보고서는 지금보다 더 강력해질 전망이다.

'경제는 중국'이라는 외교 키워드를 가진 우리로서는 미국의 환율보고서는 매우 부담스럽다. 수출 주도형 경제인 한국은 원화가치가 높아지면 경제적으로 큰 피해를 본다. 미국은 우리 경제의 아킬레스건을 십분 활용하는 것같다.

미국과 중국이 주도하는 경제협정에서도 우리나라는 고민이 많다. 우리나라가 지난달 30일 중국 주도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가입하자마자 미국은 국무부 차관보가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한국이 관심을 가져줄 것을 희망한다고 밝혔다. TPP는 중국이 주도하는 역내포괄적경제 동반자협정(RCEP)의 대항마로 미국이 만든 것이다. 한국의 생각과 달리 미국이 우리에게 원하는 건 '안보도 미국, 경제도 미국'인 것이다.

중국을 등한시하면 더 큰 폭풍우가 몰아칠 수 있다는 것도 한국의 고민거리다. 홍콩이 좋은 예다. 중국은 홍콩과 주식거래를 연계하는 후강퉁을 시행하기 전에 오랜 시간 뜸을 들이며 홍콩의 애간장을 태웠다. 홍콩에서 벌어진 민주화 시위 때문이다. 홍콩에 대한 중국의 불편한 심기는 최근에서야 풀렸다. 중국이 기관투자자들의 홍콩 증시 투자를 대폭 허용하면서 홍콩증시가 날개단 듯 오르고 있다. 홍콩의 군기를 잡는 중국의 모습이 가까운 미래에 한국에도 적용될 수 있다. 중국은 한국 경제에도 막대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

중국이 등을 돌리면 우리 경제의 먹거리가 뚝 떨어지고 미국이 우리나라에서 돈을 빼면 우리 자본시장이 초토화된다. 게다가 이웃나라 일본은 돈을 더 풀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일본이 돈을 더 풀면 엔화가치가 하락하고 우리 경제에 부담요소로 작용하게 된다. 세 나라 중간에 낀 우리 경제가 점점 힘겨운 국면으로 빠져드는 듯하다.

(국제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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