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달러-원 환율이 이른바 트릴레마(trillema)의 늪에 빠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경상수지가무려 37개월째흑자 행진을 거듭하면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원화를 환베팅의 제물로 삼을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트릴레마는 자본의 이동이 자유로운 상태에서 환율의 안정과, 자유로운 자본이동, 재량적인 통화정책이라는 세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없다는 삼중고를 의미한다. 1999년에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미국 콜롬비아 대학의 로버트 먼델 교수가 주창한 이론으로 먼델-플레밍의 법칙으로도 불린다. 변동환율제에서 경상수지가 확대되면 통화가치가 올라가고 수출 경쟁력이 떨어지는 패턴으로 환율이 변동된다는 의미다. 그 역의 관계도 성립된다.

우리나라는 2013년 811억달러 ,2014년 892억달러 규모의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했다. 올해는 무려 1천억달러에 육박하는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먼델-플레밍 법칙에 따르면 달러-원 환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250일 이동평균선에 바짝 다가서 추가 하락이 우려되는 달러-원 환율 일봉 차트>

내수 부진에 따른 수입 규모 축소로 불황형 흑자를 이어오고 있다고 하지만 글로벌 금융시장에서는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국내 총생산(GDP) 대비 무려 7%에 육박하는 경상수지흑자가 3년 연속이다,변명의 여지가 없는 규모다. 유로존의 특수성으로 환율이 거시경제와 연동되지 않는 독일과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 등을 제외하고 세계 최고 수준이다.

우리나라는 국채 10년물이 지난주말 기준으로 연 2.4% 수준이다. 독일 분트채 10년물이 0.3% 수준이고 일본의 JGB 10년물이 마이너스 금리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외국인투자자 입장에서 매력적인 투자대상이다. 외국인의 원화채 매수잔고는 이미 100조원을 넘은 상태다. 외국인은 글로벌 유동성 랠리에 뒤늦게 동참하고 있는 유가증권시장에 대한 투자도 강화하고 있다. 지난 4월에만 4조6천억원이 넘는 순매수세를 보이며 코스피지수를 2,189.54까지 끌어 올리기도 했다.

외국인은 앞으로도 더 거센 강도로 국내 채권과 주식 등을 매집할 것으로 점쳐진다. 무엇보다 원화가 글로벌 투자시장의 좋은 먹잇감이기 때문이다. 원화는 3%대의 성장세를보이는 등 글로벌 경제에서 모범생에 해당하는 펀더멘털을 가진 데다 개방도가 높아 유동성을확보하기도 쉽다. 환베팅에서 추가적인 수익도 기대할 수 있다. 외국인 입장에선`꽃놀이' 패를 쥐고 있는 셈이다. 거꾸로 우리는 그만큼 상황이 불리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누구를 탓할 수도 없다. 우리가 그동안 거시 경제정책을 그런 패턴으로 운용해 온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환율은 통치행위의 결과물이자 경제 펀더멘털을 반영한 핵심 경제지표다. 각국 지도자들이 직접적인 언급을 자제하면서도 환율 관리를 최우선 과제로 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도자들은 제로섬 게임 형태로 진행되는 글로벌 환율 전쟁에서 자칫 자국의 이해가 손상되는 쪽으로 환율을 관리했다가 낭패를 볼 수도 있다.

반대로 환율 관리로 쏠쏠한 재미를 보는 지도자들도 있다. 일본의 아베 총리가 대표적이다. 아베는 취임 초기 달러당 70엔대 였던 달러-엔 환율을 120엔대까지 무려 70% 가량 절하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는 글로벌 외교무대를 누비며 엔화 약세에 따른 부정적 여론을 무마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푸대접하던 시진핑 중국 주석 앞에서도 웃음을잃지 않았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푸들'이라는 비아냥에도 흔들리지 않는 듯하다. 그 덕분인지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엔화의 과도한 절하를 손가락질하는 여론도 크지 않다. 잃어버린 20년이라는 별명을 가졌던 일본 경제도 덩달아 부활의 몸짓을 보이고 있다.

원화도 이제 진실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우리나라 지도자들이 37개월 연속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한 가운데 어떤 패턴의 환율 정책을 구사할지 글로벌 금융시장도 시선을 고정할 전망이다.(정책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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