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한재영 기자 = 월가(街)에 본사를 둔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어트 매니지먼트가 삼성물산 지분을 전격적으로 취득하고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공식화 한 배경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

엘리어트가 '전선'을 어디까지 확대하느냐에 따라 삼성의 3세 후계 승계 과정에 중요한 변수인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이 틀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엘리어트는 4일 자료를 내 "제일모직의 삼성물산 합병 계획안은 물산의 가치를 과소평가했다"면서 "합병조건 또한 공정하지 않고 물산 주주들의 이익에 반한다"고 주장했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발표 이후 일부 외국계 증권사를 중심으로 합병 조건이 삼성물산 주주들에 불리하다는 분석이 나왔는데, 이러한 이유로 합병 반대 의사를 밝힌 기관투자자가 나온 건 처음이다.

삼성 측은 자본시장법 규정에 따라 시장이 평가한 기준을 적용해 합병비율을 산출했다고 밝혔지만 일각에서는 삼성물산의 기업가치를 지나치게 저평가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삼성물산 주주들에 일방적으로 불리하게 합병 조건이라는 것이다.

특히 엘리어트는 이날 보유 지분 현황 공시를 통해 삼성물산 지분을 7.12% 보유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지분 보유 목적을 단순 투자가 아닌, 경영 참여로 밝힌 점은 중요한 대목이다.

엘리어트가 3세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삼성물산 주주로서 적극적인 액티비스트 펀드(Activist Fund·경영참여 목적의 펀드) 역할을 한다면 삼성 입장에서는 '눈엣 가시'가 될 가능성이 크다.

엘리어트가 보유 지분을 앞세워 주주 명부를 확보하고, 소액 주주들의 여론을 삼성에 비우호적인 방향으로 유도할 가능성이 있어서다.

설사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이 이뤄지더라도 사실상 그룹의 지주사 역할을 하는 통합 삼성물산의 주요 기관투자자로서 경영에 참여한다면 삼성으로서는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다.

통합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인 이재용 부회장(16.5%)과 7.8%씩을 보유하게 되는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이서현 제일모직 사장의 그룹 지배에 영향을 줄 수 있어서다.

엘리어트는 결국 삼성물산이 이처럼 삼성그룹 지배구조 상에서 핵심 역할을 한다는 점을 파악하고서 지분을 취득한 것으로 보인다. 엘리어트의 보유 지분 규모는 기관투자자들 중에서는 국민연금(9%) 다음으로 많다.

오너 경영 체제인 삼성의 지배구조 상 '아킬레스건'을 잡아 최대한 투자 수익을 이끌어 내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엘리어트는 배당 확대와 주가 부양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외국계 투자은행(IB) 관계자는 "소수 지분을 통해 기업 경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액티비스트 펀드의 유형으로 보인다"면서 "상당 부분 경영에 간섭할 여지가 많다"고 말했다.

재계 일각에서는 엘리어트를 '먹튀 투자자'의 전형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한다. 과거 SK그룹과 소버린자산운용이 경영권을 놓고 벌어진 이른바 '소버린 사태'의 유형이라는 것이다.

2003년 당시 소버린은 SK㈜ 주식을 15% 가까이 매집해 SK그룹을 상대로 경영진 교체와 기업 지배구조 개선 등을 요구하는 등 적극적으로 경영에 참여하다가 결국 9천억원 가량의 시세차익을 올렸다.

KT&G도 2006년 기업 사냥꾼으로 불리는 미국의 칼 아이칸으로부터 적대적 인수합병(M&A) 시도를 당한 적이 있다. 칼 아이칸은 스틸파트너스와 KT&G 지분 6.59%를 사들였고, 이후 사외이사 1명을 확보하는 등 적극적인 경영개입을 시도했다.

KT&G가 국민연금 도움으로 경영권을 지켜내긴 했지만 칼 아이칸은 1년 만에 1천500억원의 시세차익을 얻고 한국을 떠났다. 삼성물산은 지난 2004년에도 지분 5%를 보유한 영국계 펀드인 헤르메스로부터 경영 개입에 시달렸고, 주가도 헤르메스의 입김에 따라 출렁였다. 결국 헤르메스도 1년도 채 안 돼 300억원 넘는 차익을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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