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늑장 대응보다는 과잉대응이 낫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와 관련해 박원순 서울시장이 말해 유명해진 위기 대응 패턴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제전문가들이 요구한 각국의 대응 매뉴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기획재정부 등 정책 당국이 메르스에 따른 경제적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새삼 주목해야 할 위기 대응 매뉴얼이기도 하다. 빠른 속도로 가라앉고 있는 경기 회복을 위해재정정책이 좀 더 과감해질 필요가 있어서다. 우리 재정정책은세수 부족 등을 핑계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자기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정부가 적자국채 발행 등을 통한 추가경정예산편성을 외면하면서 예산집행률은 2년 연속 90% 초반에 그쳤다. 집행하던 예산이 중단되면서 경제전방에 타격을 주는 이른바 '재정절벽'이 2년 연속 계속된 셈이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지난주 6월 기준금리를 연 1.50%로 인하하는 등 세월호 사태이후 기준금리를 100bp나 내렸다. 가계대출 급증 등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지만늑장이나 과소대응보다 과잉 대응에 낫다는 위기 대응 매뉴얼을 충실하게 따른 결과다.

◇과잉대응이 낫다는 건 미국이 증명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 스티븐 로치 전 모건스탠리 아시아 회장 등 경제전문가들은 "이번 위기는 너무나 심각하고 위협적이어서 통화정책과 재정정책 모두 과소하게 대응하기 보다는 과잉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위기 직후 마땅한 해법을 찾지 못하던 미국은 과잉대응이 낫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적극 수용했다.

벤 버냉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늑장이나 과소 대응보다 과잉대응이 낫다는매뉴얼을 정책으로 옮긴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다.

버냉키 전 의장은 달러화를 공중에서 살포하는 '헬리콥터 벤'이라는 비아냥을 감수하며 금융시장에 유동성을 무차별적으로 퍼부었다. 대표적인 과잉대응 선호론자인 버냉키 전의장의 조치 등으로 글로벌 금융위기의 진앙인 미국이 가장 먼저 경제회복에 성공하는 역설적인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미국 다우지수가 한 때 18351.36(5월19일)를 찍는 등 신고가를 경신한 것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통화정책을 과감하게 펼친 결과로 풀이된다. Fed는 연방기금금리(FFR)를 올해까지 제로 수준에서 동결할 것이라고 공언한 것도 모자라세 차례에 걸쳐 양적완화(QE3)를 실시한 바 있다.

◇과소대응의 전형으로 전락한 한국의 재정정책

우리나라 재정정책은 전형적인 과소 대응의 사례로 손꼽힌다. 세수 부족 등을 이유로 배정된 예산도 제대로 집행하지 못하고 있다. 세금이 덜 걷히는 등 세수가부족하면 적자국채를발행해서라도 예정된 정부 지출이 집행돼야 당초 기대한 재정정책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우리나라 정부는 국가채무 증가에 따른 재정 건전성 악화 등을 이유로 적자국채 발행을 꺼렸다. 결국 연말께 세수 부족을 이유로 집행되던 예산이 갑자기 삭감되거나 중단되는 이른바 재정절벽이 2년 연속나타났고 올해도 같은 현상이 계속될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2014년 회계연도 국가결산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예산 317조 가운데 291조만 집행하고 나머지 25조원은 집행하지 못해 예산집행률이 92%에 그쳤다. 세입이 예상보다 11조원이나 덜 걷힌 영향이 컸다. 앞서 2013년에도 세수 부족을 이유로 예산 집행률이 91.9%에 그치는 등재정의 과소대응이 경기 회복에걸림돌이 되고 있다.

메르스 충격으로 올해도 경기 부진에 따른 세수부족이 불가피할 것으로 점쳐진다. 이제 재정도 찔끔 대응이 아니라 대규모 추경 편성 등을 통해 자기 몫을 다할 때가 된 것같다. (정책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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