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경 KDI 원장

(서울=연합인포맥스) 한창헌 전소영 기자 = 반년 넘게 졸랐다. 저성장의 덫에 걸린 한국 경제가 돌파구를 마련하려면 어떤 정책적 수단이 필요할지 김준경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의 생각을 직접 듣고자 했다. 1971년 설립된 KDI는 '한강의 기적'을 이끌며 우리나라 경제의 초석을 다졌다는 평가를 받는 국책 연구기관이다. 김 원장은 한국을 대표하는 싱크탱크의 수장이자 25년 넘게 이 기관에 몸담은 '정통 KDI맨'이다.

지난 17일 연합인포맥스와 세종시 KDI 사옥에서 만난 김준경 원장은 우리나라 경제 상황에 대해 얘기하면서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은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데, 현 상황은 잠재성장률마저 밑돌 정도로 심각한 수준에 있다고 지적했다.

김 원장은 "(경제주체나 정책당국 모두) 저성장 추세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지금처럼 살면 된다고 하는 분위기는 큰 문제다"며 "고통스러운 구조개혁을 하지 않고 지금처럼 지낸다면 2~3% 성장도 지키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우리 경제가 위기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정책 패키지 차원에서 '세 개의 화살'을 동시에 쏘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의 아베노믹스에 대해 비교적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일본 이상의 고강도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이달 기준금리를 내렸지만, 물가나 경기 상황 등을 고려하면 아직 충분한 수준은 아니라고 봤다. 금리정책은 통화당국이 결정할 사항이지만, 현 상태에서 금리정책은 인하쪽에 무게를 두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라는 의미다.

이와 함께 정부의 재정확대 정책은 불가피한 수순이라고 진단했다. 무엇보다 우리 경제를 잠재성장률 수준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게 급선무이며 이를 위해선 제로베이스의 재정개혁을 통해 비효율적으로 지출되는 부분을 차단하고 청년 일자리 창출 등 생산적인 부문에 재원을 집중적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원장은 경제 살리기를 위한 구조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개혁의 핵심은 부실기업 정리 등 기업 구조조정에 있다고 말했다. 외환위기 당시 과감한 기업 구조조정과 함께 통화정책, 재정지출이라는 정책 수단을 사용해 위기에서 빠르게 벗어났던 경험에서 나온 얘기다.

그는 "부실기업을 해결하지 못하면 금리를 인하하고 확장적 재정정책을 펴도 효율성이 떨어진다"며 "미국처럼 제로금리까지 정책금리를 낮추고 양적완화를 실시하면서 가계부문의 부실 정리 등 고통스러운 디레버리징을 통해 자원을 효율적으로 재배치한 사례를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완벽주의자다. 여전히 리더보다는 학자를 꿈꾼다. 원장이 되면서 직접적인 연구 활동에 제약이 생겼지만, KDI가 발간하는 모든 연구 보고서를 챙겨서 읽는 것은 물론 저자와 직접 토론을 하는 일상을 즐긴다.

그는 워커홀릭이다. 밤 11시 퇴근, 4시 기상이 일과가 됐다. 연구위원 시절 매일 새벽 4시에 출근하는 바람에 현관문을 열어주는 경비원들이 불편해할까봐 창문을 잠그지 않고 퇴근했다가 현관 대신 창문으로 들어왔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지금도 보고서를 보다가 궁금한 게 생기면 밤낮 가리지 않고 KDI 박사들에게 전화한다.

김 원장 부친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최장수 비서실장을 지낸 김정렴씨다. 박 전 대통령 시절 재무부 장관과 상공부 장관을 지내며 관 주도 성장시대를 이끈 인물이기도 하다.

김 원장은 경기고와 서울대 계산통계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UC 샌디에고에서 경제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0년 KDI에 연구위원으로 입사해 25년 넘게 몸을 담고 있다. 2008년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실에서 금융비서관을 지냈다. 당시 경제수석은 김중수 전 한국은행 총재였다. 공교롭게도 김 원장은 지난해 김중수 전 총재의 유력한후임 후보자로 거론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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