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반대가 클수록 정부의 협상력을 높여 채권단으로부터 더 좋은 합의안을 끌어낼 수 있다."

채권단 압박에 국민투표라는 정면승부를 걸었던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의 주장이다. 압도적 반대로 나온 그리스 국민투표 직후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일단 치프라스의 `배수진 전략'은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 같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그리스에 협상문이 열려있다"며 그리스 달래기에 나선 듯한 모습이다. 국제통화기금(IMF)도 그리스의 지원 요청이 있다면 도와주겠다고 유화제스처를 보내고 있다.

IMF발 외환위기 당시 채권단의 가혹한 압박에 치를 떨었던 한국민이 보기엔 그리스 정부와 국민들은 채권단의 압박쯤은 아랑곳 하지 않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의 이런 배짱 전략 배경에 대해선 여러 분석이 나온다. 독일과의 역사적인 관계에서부터 좌파정권의 이데올로기,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에 따른 후폭풍 우려까지 다양하다.

이처럼 배경과 원인이 다르다고 하더라도 약 20년전 외환위기 당시 한국의 대응과 그리스의 그것은 달라도 너무나 다르다. 우리는 나라를 살리기 위해 금붙이를 모았고, 공무원에서 일반 국민과 어린 학생들에 이르기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국가부도를 막아내자는 인식을 함께했으며, 결국 우려했던 것보다는 빠르게 정상화를 이뤄냈다.

물론 지금 그리스의 해법이 20년전 우리의 그것보다 못하다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한가지 차이를 꼬집을 요량이다.

현재 그리스 정부는 국민을 이끌고 있다. 채권단 압박에 맞서 국민의 재산과 생활을 보호하는 것을 우선시 하고 있다. 정체나 이데올로기, 정치적 계산은 별개다. 일단 모든 일에 국민이 중심에 있는 듯하다. 정치권에서도 여야가 따로없다. 정견은 모아지고 국민투표의 결과대로 힘차게 밀고 나가고 있다.

반면, 외환위기 당시 우리는 국민이 국가를 걱정한 측면이 컸다. 개인의 득실은 일단 미룰 정도로 국가의 안위가 먼저였다. 국민이 사재를 털어 빈 국고를 채우려 한 게 단적인 예다. `국가가 없이 어찌 국민이 있겠나'라는 애국심을 행동으로 옮긴 국민이었던 셈이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언제나 그랬던 것같다. 증오하던 재벌이 외세로부터 공격을 받는 경우가 생기면 미움은 접어두고 국가의 안녕을 위해 기업을 응원할 정도다.

그리스가 이번 위기를 정부의 전략대로 극복할 경우 국민이 국가에 고맙다고 하는 게 맞다면, 우리의 경우 국가이건 기업이건 대체로 국민에게 사례해야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산업증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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