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국내 재벌의 후진적 지배구조 문제가 다시 논란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막장 드라마가 따로 없는 재계 서열 5위 롯데그룹의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면서다.

재벌가의 경영은 너무나 제왕적이다. 총수의 손가락만으로 임원의 해임을 지시할 수 있을 정도다. 오너 마음대로 하다보니 기업 지배구조도 불분명하기 십상이고, 창업주의 독단적인 황제경영이 행해지다보니 승계과정에서 종종 `왕자의 난', `골육상쟁' 같은 살벌한 단어까지 등장하곤 한다.

물론 후계를 둘러싼 분쟁은 다른 나라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유독 한국에서만큼은 자주 발생하는데다 그 정도가 매우 심해 우리를 놀라게 하고 있다. 실제로 우리가 아는 웬만한 재벌그룹 중 경영권 분쟁을 겪지 않은 곳이 있었는 지 별로 기억나지 않을 정도니 말이다.

물론 미국이나 유럽 대기업들이 주로 택하고 있는 전문 경영체제도 나름 합리적이긴 하지만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잭 웰치식' 전문 경영의 기본은 부실한 계열사는 과감하게 도려내고, 직원은 정리해고 하며, 전문경영인도 마찬가지 잣대로 성과에 따라 임기가 제한된다. 실적이 올라 주가가 오른 계열사는 쉽게 매각도 하는 등 `실적지상주의'의 냉철한 경영방식을 종종 택하기 때문에 기업의 영속성과 조직원의 충성도 측면에서는 취약하다는 지적도 있다.

이런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스웨덴 재벌 발렌베리 가문의 100년 넘는 전통의 경영세습 방식이 대안으로 논의되기도 했다.

발렌베리는 지주회사인 인베스트AB가 19개 계열사의 지분을 갖지만, 인베스트AB를 발렌베리 재단이 소유하며, 발렌베리 재단은 그룹의 이익금의 85%를 공익 재단에 기부하고 사회에 환원한다. 발렌베리 재단이 자회사들을 모두 소유하고 있긴 하지만 발렌베리 가문의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기업의 이익을 사용할 수 없도록 돼 있다.

또, 후계 경영자를 선택할 때도 엄격한 기준을 내세운다고 한다. 부모의 도움 없이 대학을 졸업하고, 해외 유학하고, 해군 장교로 복무할 것 등의 엄격한 자체 규율이 있다.

철저히 능력 위주로 후계자를 선정한다는 것이다. 가족 경영자의 독단적인 경영을 차단하기 위해서 외부의 전문경영인을 고용해 `투 톱' 체제로 경영하는 것이 발렌베리식 경영으로 알려져 있다. 발렌베리 가문의 가훈은 `'존재하되 드러내지 않는다'는 경영 철학을 내세운다고 한다.

발렌베리 방식이 전적으로 옳다는 건 아니다. 다만, 그들이 내세우는 철저한 내부 통제라던지 사적 이익만을 추구하듯 보이는 다른 기업들과는 적어도 차별화되는 `이데아(Idea)'가 있다는 차이를 말하려는 것이다.

이 내부 규칙에 대한 신념이 공유된다면 경영권을 노린 형제가 죽어라 싸울 일도 없을 것이다. 또 사회적인 존경을 받을 수 있고 선대가 일궈놓은 업적을 가문이 이어갈 수 있는 정당성 역시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재벌 문제에 대해 할 말은 많지만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여전히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이 부족하다는 말로 갈음할 수 있다.

마침 정치권에서도 재벌 개혁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고 하니 모처럼 좋은 성과가 있었으면 한다. (산업증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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