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서울 외환시장 등 국내외 금융시장이 삼복더위에도 살얼음판을 걷는 듯 팽팽한 긴장감에 사로잡혀 있다. 중국 인민은행(PBOC)이 3일 연속 위안화를 큰 폭으로 평가절하하면서 달러-원 환율 등 전세계 금융시장 지표가 격랑에 휩싸이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17일 위안화의 기습적인 평가절하 뒤편에는 중국의 수출부진보다 더 큰 그림이 숨겨져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셰일혁명에 따른 저유가와 글로벌 디플레이션의 망령이 그 장본인이다.

◇ 중국이 투자를 줄이니 사우디·호주가 배고프다

중국은 그동안 투자가 성장을 주도하는 패턴이었다. 원자재도 전 세계의 공장 노릇을 하는 중국에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갔다. 국제유가가 지난해 이맘때만 해도 배럴당 100달러가 넘는 고유가를 유지한 것도 중국의 8%대 성장(바오바)이 의심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동과 러시아 등 산유국을 비롯해 호주와 캐나다 등 선진 자원부국도 중국의 투자와 성장의 과실을 지난 10여년간 만끽했다. 약한 달러화가 촉발한 원자재에 대한 투기적 가수요는 덤이었다. 사우디 등 중동 산유국은 넘쳐나는 돈을 주체하지 못해 원유만 수출하는 데서 벗어나 석유화학 등 국내 산업을 고도화하겠다며 대규모 플랜트 발주에 나섰다. 우리나라 건설사 등이 수주한 플랜트 물량과 조선업종의 해양플랜트 수주도 이런 선순환 구조의 과실이었던 셈이다.

끝없이 늘어날 것 같던 중국의 투자가 과잉의 덫에 빠지면서 지난해 말부터 사정이 달러지기 시작했다. 선순환 구조로 돌아가던 자원 수급에 균열이 생긴 것도 이맘때다.

미국이 셰일가스 개발을 본격화하면서 중국 투자부진의 후폭풍은 더 거세졌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50달러 수준까지 반토막 나면서 글로벌 디플레이션의 트리거가 될 것이라는 우려까지 고개를 들고 있다.

당장 사우디 등 중동 산유국부터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산유국인 사우디가 대규모 국채 발행에 나섰다는 소식도 예사롭지 않다. 세계 최대의 경상수지 흑자국가 가운데 하나였던 사우디가 저유가 탓에 돈을 빌려써야 할 정도가 됐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세계의 공장인 중국이 투자를 줄이면서 철광석을 공급하던 호주도 직격탄을 맞고 있다. 통화가치가 무려 20%나 하락한 것도 중국발 수요부진 탓이다.

미국이 연방기금금리 인상을 예고하면서자원 부국들은 엎친 데 덮친 충격을 받고 있다. 약한 달러의 대체 투자상품으로 인기를 끌었던 원자재 가격이 강한 달러의 귀환으로 더 큰 폭으로 조정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저유가가 디플레이션으로 고착화된다면...

위안화의 평가 절하가 예사롭지 않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여태까지 중국의 성장으로 선순환 구조를 보였던 글로벌 경제흐름이 정반대로 악순환의 고리를 완성할 조짐을 보이고 있어서다. 셰일 가스 혁명으로 촉발된 저유가가 축복이 아니라 저주가 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서부텍사스산 중질유(WTI) 현물 가격 월봉 차트와 중국 수출의 월별 수출 동향. 중국의 수출이 유가 하락에 1년가량 후행하면서 가파르게 줄어들고 있다>

원자재를 팔고 중국산 제품을 사서 썼던 자원부국들이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중국의 수출이 줄고 다시 중국이 투자를 줄이는 악순환이 반복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중국이 위안화를 기습적으로 평가절하한 것도 상품이 안 팔리니 가격을 내려서라도 팔아보겠다는 절박한 몸부림인 셈이다. IT 제품 등 공산품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면서 중국과 한국 등 제조업 강국들의 경제지표에는 이미 이상신호가 감지되고 있었다. 중국은 전 세계적인 수요 부진 등으로 최근 수출이 8%나 줄었고 한국도 7개월 연속 수출이 내리막길을 타고 있다.

저유가가 중국의 투자 부진과 상승작용을 일으켜 글로벌 디플레이션 압력을 가중시킨 영향이다.

기획재정부 등 우리나라 당국은 중국의 위안화 평가절하가 우리나라의 수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달러-원 환율도 위안화 절하 등의 영향으로 상승 압력을 받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위안화 평가 절하가 글로벌 디플레이션의 전조라면 상황이 달라진다. 전 세계적으로 유효수요가 그만큼 줄어들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당국은 물론 금융시장도 건설사의 해외 수주 부진과 조선업종의 해양플랜트 대규모 적자에서 저유가와 중국의 투자부진 등이 우리나라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 좀 정밀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정책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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