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2000년대 중반 '디스커버리', '인디펜던스' 등을 내세운 미래에셋자산운용 이후 뚜렷한 스타 운용사가 없었다. 한 때는 트러스톤과 신영이, 한국밸류가 그 자리를 노렸지만, 올해 중소형주 장세에서는 뚜렷한 승자 두 곳이 나타났다.

펀드계의 괴물. 메리츠자산운용과 이스트스프링자산운용이다.

두 회사는 사실 운용업계에서는 '듣보잡'이다. 이름 값으로 치면 거의 신생이나 다름없다.

그 중심에는 '외쿡물' 좀 먹었다는 존리 대표와 박천웅 대표가 있다. 두 사람은 뉴욕 월가와 홍콩, 싱가포르 등 글로벌 금융의 중심에 있었다는 공통 분모가 있다.

박 대표는 2000년 메릴린치, 2003년 모스탠리증권 한국지점 상무 등을 거치면서 이미 많은 투자자들에게 알려져 있지만, 올해 운용업계에서는 새로 등장한 라이징 스타 존리 대표에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됐다.

존리 사장은 1990년대부터 미국 월가에서 '더 코리아 펀드'를 운용하는 등 펀드매니저로 활약했다. 거의 1세대다.

35년 만인 2013년 12월 메리츠자산운용 대표로 자리를 옮길 때 미국 시절 함께 펀드를 운용하던 팀원 6명과 함께 이적했다. 월가에서 여의도라니.

짧게는 10년, 길게는 20년 동안 그와 동고동락했던 매니저들이 올해 사고를 쳤다. 올해 자금은 메리츠, 아니 존리에게만 쏠렸다.

그는 "당시 메리츠는 변하고자 하는 열망이 강했다"며 "타이밍과 운이 이렇게 좋을 수는 없었다"고 했다.

자신의 팀과 회사 창립까지 고민했던 그는 메리츠자산운용을 새롭게 재건하기로 하고, 부임과 동시에 '메리츠코리아펀드'를 제외하곤 메리츠의 모든 펀드를 없앴다. 운용사는 여의도에 있어야 한다는 선입견을 깨고 광화문 옆 북촌으로 이사했다.

존리가 오고나서 메리츠자산운용의 관용차가 사라졌다. 그는 여전히 북촌 앞 마을버스 정류장에서 지하철 역까지 버스를 타고 다닌다. 카톡 하나에 달려오는 택시가 있으니 급해도 걱정할 게 없다는 게 그다. 언젠가 그를 잘 아는 인사가 존리를 이렇게 표현했다. "그의 인생엔 리스 뿐이다"고. 존리는 한국인이 집과 차를 사는데 많은 돈을 쓰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에게 가치 있는 것은 지금 싼 주식, 주식 뿐인 셈이다.

물론 이런 파격은 오너가 있는 회사여서 가능했다. 오너십과 변화겠다는 의지는 2년도 안돼 존리가 어디가나 주목받는 인물이 되게 했다. 최근 증시에는 `메리츠 주가', `존리 주가'라는 말이 있다. 미래에셋 호황기처럼 가뭄인 운용업계에 계속 돈이 들어오는 메리츠는 '빠지면 살 수 있는' 실탄이 있다. 결국 종가에는 이기는 곳이 메리츠, 존리 주식이어서 '따라하기'도 암암리에 있다.

그런 그가 최근에 중국주식 포럼에 나타났다고 한다. 중국증시가 국내증시를 좌지우지하고 있어 관심이 높은 자리였다.

그 자리에 같이 있었던 한 인사는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존리가 제일 앞 줄에 앉아 있는데, 네이티브인 그가 통역기를 쓰더라. 우리보다 영어라면 더 잘 알아들을텐데 왜?…그는 한국말로 열심히 글자를 받아 적고 있었다. 또 정무위원장 등이 와있는 그 자리에서 제일 앞줄에 앉은 인사 그 어느 누구도 휴대전화의 휴자도 못 꺼내는데, 존리는 실시간 시세를 확인하고 있었다. 장기투자도 역시 시장을 보고, 시장을 두려워하는구나에 두번 째로 놀랐다. 그리고 좀 그렇지만, 존리는 메리츠 배지를 달고 있지 않더라"

존리는 본인이 아는 영어보다는 통역사를 통해 한국에서 이해되는 말에 집중했다. 이미 한국 펀드시장에서 '한 판' 하기로 한 이상 한국 정서가 더해진 이야기를 많이 들으려고 한 것은 아닐까.

그는 "정치권력에서 자유롭고 진짜 기업에만 집중할 수 있다면 운용업계에서 어느 누구보다 경쟁력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존리는 참 부럽다"고 말했다. (금융증권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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