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시민권을 가진 가구의 90.5%가 자기 집을 가진 나라. 그 가운데 82%가정부가 공급한 주택에서 사는 나라. 모범적인 경제정책으로 전 세계의 부러움을 사고 있는 싱가포르의 또 다른 면모다.

◇연금 자산 활용해서라도 자가보유율 높인 싱가포르

싱가포르가 주택 자가보유율을 90% 수준으로 끌어올린 비결을 보면 주택 보급에만 공을 들이는 우리나라 정책 당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공급측면보다 주택 실수요자를 집중 지원하는 수요 중심의 주택정책을 펼쳤기 때문이다.

싱가포르는 실수요자의 주택 구매력을 높여주기 위한 방안으로 중앙연금기금(CPF:Central Provident Fund)을 적극 활용했다. CPF는 우리나라의 국민연금과 같은 성격이지만 조성기금을 가입자의 자가주택 구입지원,의료,교육 등에 활용한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가진다.





<싱가포르 시민권자들이 우리나라의 국민연금에 해당하는 CPF를 활용해 주택을 구입하는 방식>

CPF는 일반계정(ordinary account), 특별계정(special account), 의료계정(medisave account) 등 크게 3개 계정으로 구분된다. 특별계정은 노후 자산 축적 및 강화를 위하여 은퇴 관련된 금융상품에 투자하고 의료계정은 입원과 의료보험에 사용된다. 전체의 39%로 가장 비중이 큰일반계정이 주택구입, 교육 목적으로 사용 가능한 기금이다. 정부가 연2.5% 수익을 보장한다. CPF의 일반계정 자금은 주택구입시 초기자금(down payment) 불입에 사용될 수도 있고 매월 지급되는 원리금 상환액(monthly housingpayment)으로도 사용될 수 있다.

싱가포르는 생애 최초 주택 구입자에 대해서는 보조금도 지급한다. 재정을 동원해서라도 자가보유율을 올리겠다는 수요자 중심의 주택정책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500조원 국민연금도 발상전환 해야

전·월세난에 시달리는 우리 세입자는 싱가포르 국민에 대한 부러움을 넘어 기획재정부와 국토교통부 등 경제정책 당국이 원망스럽다. 우리는 한 해 20만~30만채의 집을 짓고 있지만 2014년 기준으로 주택 자가점유율이 53.6%에 불과하다. 주택공급이 꾸준하게 늘고 있지만 자가점유율은 2008년 56.4%로 정점을 찍은 뒤 2010년 54.3%, 2012년 53.8% 로 해를 거듭할수록 뒷걸음질친다. 같은 기간 총주택을 가구수로 나눈 주택보급률은 2008년 100.7%로 올라선 뒤 2012년 102.7%, 2014년 103.5%로 이미 공급과잉 수준으로 접어들었다. 박근혜 정부가 규제완화를 통해 공급중심으로 펼친 주택 정책이 서민주거 안정으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우리나라는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어섰지만 아직도 공급 중심의 부동산 정책을 펼친다. 기업에 연 5%대의 임대수익을 보장하겠다는 뉴스테이 정책이 대표적이다. 서울 중구 신당동에 공급되는 뉴스테이 59㎡의 임대료는 보증금 1억원에 월세 100만원이다. 5%의 금리를 적용하면 전세가격만 3억4천만원 수준이다. 정기예금금리 연 2%대인 시대에 기업에 5% 수준의 임대 수익을 보장하는 뉴스테이는 주택 실수요자에 또 다른 멍에가 될 수 있다.

초저금리 시대를 맞아 공급 중심에서 수요 중심으로 발상만 전환하면 활용 가능한 재원은 많다. 당장 500조원 규모의 국민연금도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다. 지난 주말 기준으로 국고채 30년물 수익률이 연 2.3%에 불과하다. 정부가 연 2.5% 수익을 보장한다면 국민연금 입장에서 구미가 당길 수 있다. 특히 국민연금은 장기채 부족으로 자산과 부채의 심각한 미스매칭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정부와 국민연금은 이제라도 싱가포르가 어떤 방법으로 90%대의 자가보유율을 달성할 수 있었는지 좀 더 진지하게 연구해야 할 것 같다.(정책금융부장)

ne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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