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지난 주 '통 큰' 추가 완화정책을 시사하면서 유로화가 급락하고 주가가 급등하는 등 국제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드라기 총재는 고비 때마다 등장해 시장의 흐름을 뒤바꾸는 것으로 유명하다. '필요하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그의 입장은 매번 시장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그의 발언에 강세를 보이던 유로화가 방향을 튼 것은 2012년 7월과 올해 1월에 이어 세 번째다.

드라기 발언은 선진국 간 환율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음을 방증한다. 미국의 금리인상이 늦춰지면서 달러 약세 현상이 나타나게 되자(유로화 강세) 숨겨둔 추가완화 카드를 꺼낸 것으로 풀이된다. 유로화 강세를 억제하려는 그의 의도가 추가 완화 발언으로 구체화됐다는 뜻이다.

오는 30일 통화정책 회의가 예정된 일본도 엔저 강화를 위한 추가 양적완화를 단행할지 시장의 이목이 집중된다. 일본 경제는 4월부터 9월까지 6개월간 마이너스 성장률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작년 여름에 이어 1년 만에 경기침체에 빠진 것이다. 일본은 작년에도 경기침체를 탈출하기 위해 10월 통화정책 회의에서 추가 완화를 결정했다. 전문가들은 작년과 올해 상황이 비슷하다며 10월 추가완화를 조심스럽게 전망한다.

그러나 일본은행의 심경은 복잡할 것같다. 추가 완화를 해도 경제가 쉽게 살아날지 자신할 수 없어서다. 2% 물가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 엔화 약세를 통한 경기부양이 효과가 있을지 확실치 않다. 일본의 물가가 오르지 않는 건 국제유가 하락과 내수 부진 때문인데 돈을 더 푼다고 해서 근본적인 문제해결이 되겠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전통적 우방인 미국이 환율보고서에서 엔화 저평가 문제를 지적한 것도 일본은행으로선 부담 요소다. 최근 2~3년간 한국 등 신흥국의 환율 저평가를 문제삼았던 미국은 10월 펴낸 보고서에서는 유럽과 일본의 환율 문제를 지적했다. 미국은 일본이 돈을 풀어서 대응하기보다는 재정정책 등 다른 방법을 통해서 경기부양을 할 것을 주문했다.

미국이 신흥국 압박 수위를 낮추고 일본과 유럽의 환율을 문제삼은 건 이르면 연말, 늦으면 내년부터 시작될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인상을 앞두고 달러강세를 완화하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분석된다. 달러 강세가 미국 경제 회복에 부담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에 미리 환율보고서를 통해 일본과 유럽에 주의를 환기시킨 것이란 풀이다.

이런 상황이 일본의 추가완화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과 일본이 협력관계를 강화하는 가운데 일본은행이 미국 환율보고서의 지적을 한 귀로 흘려듣긴 힘들지 않겠느냐는 분석이다. 드라기 총재는 미국의 지적에도 자기 할 말을 했으나 미국과의 역학관계상 일본은 그렇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이너스 성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일본의 경제상황은 작년과 올해 달라진 것이 없지만, 주변 환경이 달라진 만큼 일본은행의 정책대응도 변화할 수 있을 지 주목된다.

(국제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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