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훈의 수요라운지> 대우증권 파란만장 40여 년史
<김경훈의 수요라운지> 대우증권 파란만장 40여 년史
  • 승인 2015.12.23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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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인포맥스) KBD대우증권의 매각이 임박했다. 미래에셋증권이 본입찰에서 최고가를 써내 우선협상자 선정이 유력한 상황이라고 한다.

대우증권은 `대우'의 아픈 역사와 맞물리면서 영욕의 40여 년을 버텨왔다.

대우그룹이 구 동양증권을 인수해 1970년 설립한 것이 모태인 대우증권은 1973년 대우실업 계열사로 편입돼 1983년부터 `대우증권'이라는 상호를 쓰기 시작했다.

같은 해 삼보증권을 인수 합병해 덩치를 키운 뒤 국내 증권사 최초의 해외사무소인 뉴욕지점을 개설하기도 했다.

하지만 외환위기 직후 대우그룹이 해체되면서 1999년 대우증권 최대주주가 제일은행 등 8개사로 변경됐다.

이후 2000년 다시 최대주주가 한국산업은행으로 바뀌면서 KDB대우증권 간판을 달게 된다. 2009년에는 산업은행 민영화에 따라 산은금융그룹의 자회사로 재편입되면서 오늘날에 이르게 됐다.

인수합병으로 시작해 최대주주의 도산을 겪으며 주인을 찾지 못하고 표류하는 동안에도 대우증권은 전통적 브로커리지(중개) 업무의 국내 최강자로 군림했으며, 종합자산관리와 리서치, 기업공개(IPO) 등 전 부문에서 최상위권을 달린 증권사로 자리매김해왔다.

증권맨의 사관학교로도 불린 대우증권 출신 인사들의 `맨파워'는 여의도 증권가를 장악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실제로 증권,운용사 임원 가운데 대우증권 출신이 다수 포진해있다.

대우증권 40여년의 역사는 한국 증권시장의 역사와도 궤를 같이 한다.

1970년대 증시 태동기에 출발해, 증시 도약기인 1980년대에 괄목할 성장을 이뤄냈으며, 외환위기로 시장이 고난을 겪은 1990년대에 대우그룹 해체로 표류해왔다.

앞으로 대우증권의 10년은 어떤 모습일까.

대우사태 이후 그룹 계열사가운데 어떤 곳은 홀로서기를 했고, 일부는 타기업에 인수되면서 '대우'라는 브랜드를 떼어내기도 했다.

하지만 대우증권이라는 브랜드에 대한 시장의 평가는 결코 낮지 않다. 대우증권 입찰에 참여한 3개 증권사의 응찰 추정 가격이 장부가 1조8천억원에 비해 많게는 30% 높다는 점이 이를 반증한다. 통합 대우증권은 최대 총자산 60조원대의 초대형 증권사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새 주인을 맞게될 `대우증권'의 간판은 사라질 수도 있겠지만, 그 명맥은 여의도 증권가에 스며들고 녹아 우리 증시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산업증권부장)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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