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정부와 한국거래소가 금융시장의 핵심 인프라에 해당하는 채권(債券: bond)시장을 너무 가볍게 다뤄 빈축을 사고 있다. 채권시장은 비효율적이고 불투명하다며 장내 거래와 직거래 비중을 일방적으로 확대하면서다. 서울 채권시장 참가자들은 거래소 등이 채권시장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실적 쌓기식 제도 개선이 추진되면서 양질의 일자리가 구축되고 금융시장의 안정성까지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도 이어졌다.

채권시장은 주식시장과 함께 자본주의 근간인 유가증권시장을 받치는 두개의 기둥 가운데 하나이지만 일반 투자자들이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뒤따른다. 채권의 만기구조와 상환 조건 등이 워낙 세분화된 탓에 현금흐름도 정형화되지 않아서다. 대부분 나라에서 채권이 거래소를 통하지 않고 장외시장을 의미하는 이른바 OTC(Over-The-Counter)시장에서 거래되는 이유다. OTC는 채권 등 금융상품이 이미 설립된 중앙 거래소를 거치지 않고 장외에서 브로커(중개인)를 통해 거래되는 시장이다.

OTC 시장의 대표 상품인 채권은 딜러간 수요를 브로커가 매칭시키는 형태로 작동한다. 이 과정에서 브로커들은 시장내 정보를 딜러와 공유하는 걸 최우선으로 한다. 해당 종목의 가격 산정에도 정보 공유가 우선돼야 하기 때문이다.

브로커들은 채권 발행기관과 시장도 연계하는 역할을 한다. 발행기관의 다양한 자금수요와 기관 투자자의 투자수요를 연계하는 건 거래소가 흉내낼 영역이 아니다.

거래소 등이 채권 직거래 비중 확대의 근거 가운데 하나로 내세운 비싼 수수료도 사실과 다른 부분이 많다.

연기금 관계자들은 투자자들이 필요한 채권을 구해 온다면 100억원당 100만원인 수수료는 비싼 게 아니라고 한다.국민연금이 지난해 해외 금융기관에 지불한 수수료가 5천억원 규모인 데 비해 국내 금융기관에 지불한 수수료가 2천500억원에 불과한 것도 이런 주장을 뒷받침한다.

채권시장은 주식시장과 달리 자금사정이 한 번 꼬이면 파장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확산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대공황 이후 가장 심한 고통을 주고 있는 글로벌 금융 위기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채권시장의 붕괴에서 시작됐다. 그리스 등 유로존의 금융위기도 해당 국가의 국채가 소화되지 못하면서 촉발됐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호가를 중개하는 스페셜리스트로 가득찬 뉴욕증권거래소의 플로어>



거래소는 물론 정부도 제도 개선에 앞서 일자리 보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한다. 컴퓨터가 로보 어드바이저라는 이름을 내세워 투자 전략까지 제시하는 등 양질의 일자리를 빠른 속도로 구축할 조짐까지 보인다.

전세계 IT 흐름을 주도하는 미국이 아직도 오프라인인 플로어에서 거래를 성사시키는 이른바 오픈 아웃크라이(open outcry) 방식을 고집하는 점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뉴욕증권거래소, 시카고선물거래소 등 세계 수준의 미국 거래소에선 플로어에 참여한 사람들이 직접 거래를 성사시킨다. 심지어 뉴욕이나 시카고의 상품 거래소에선 손발짓을 써 서 고함 지르는 방식을 쓴다. 우리의 공동어시장에서나 볼 수 있는 전근대적인 방식이다. 아웃크라이 방식으로 호가를 중개하는 사람들은 스페셜리스트로 고액의 연봉자다. 효율성만 따지는 우리 거래소처럼 전산시스템에 의존했다면 역사박물관에서나 찾을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다.

정부와 거래소는 오는 3월 제도 시행에 앞서 효율성보다는 사람이 먼저라는 생각을 가졌으면 좋겠다. 제도 개선으로 없어질지도 모를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누군가의 아버지이자 배우자이고, 자식이기도 하다.(정책금융부장)

ne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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