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미국의 대형 투자은행(IB)이었던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한 2008년 9월15일은 후대에 문명사의 변곡점으로 기록될 수도 있어 보인다. 리먼 파산 이후 자본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요구하는 이례적인 현상이 속출하고 있어서다. 70대의 자칭 사회주의자인 버니 샌더스가 미국 민주당의 유력한 대통령 선거 후보로 떠오른 것도 리먼 사태의 연장선상으로 볼 수 있다.

샌더스는 유세 때마다 "자유는 절대로 그냥 주어지지 않으며 싸워서 쟁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알버트 아인슈타인 박사를 연상시킬 정도로 헝클어진 백발을 가진 그는 "우리는 월스트리트와 기성 정치체제에 맞서 싸우고 있고 기존 미디어와도 일전을 벌이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선동가로서의 면모도 과시한다.

월스트리트의 탐욕과 기성 정치인들의 정쟁에 지친 상당수 미국 유권자들은 샌더스의 주장이 시대정신이라며 열광한다. 5년전 월스트리트를 점령(Occupy Wall Street)하라는 구호로 전국적인 시위를 벌이던 모습이 미국 대선이라는 정치현실에 투영되고 있는 셈이다.

실적만 좋으면 수천억원씩 챙기던 '월스트리트식 자본주의'도 샌더스의 선전으로 궁지에 몰리고 있다. 샌더스는1%의 월스트리트 부자들이 아니라 99%의 국민을 위한 정책을 세울 것이라며 사자후를 내뱉고 있다.

고용주 등 가진자에만 유리한 세제도 뜯어고치자는 게 샌더스의 주장이다.

그는 월가 혁신과 세제 개혁으로 얻은 재원으로 주립대학 무상교육 등을 ?한 중산층 복원을 약속했다. 민영화된 보험 체계로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싸고비효율적인 의료시스템도 샌더스의 표적중 하나다. 급기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까지 동조하면서 샌더스를 거들고 나섰다.

샌더스는 한 발 더 나가더 이상 신자유주의식 자본주의는 유효하지 않다며 덴마크 등 북유럽식 자본주의로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칭 사회주의자인 샌더스는 대세론의 주인공인 힐러리 클린턴을 턱 밑까지 추격했다. 일부 매체들은 현재의 추세라면 샌더스가 힐러리를 따돌릴 수도 있다고 점친다.

리먼사태가 없었다면 괴짜 할아버지 후보에 그쳤을 샌더스가 진짜 미국 대통령이 되면 어떻게 될까. 사회주의자 샌더스가 자본주의 심장인 미국의 대통령이 되면 흑인인 오바마 대통령의 당선만큼이나 문명사적 의미를 가질 게 틀림없다.

그가 대통령이 되면 '이기(利己)의 선동(煽動)'으로 체제를 유지하던 신자유주의식 자본주의에 급제동이 걸릴 수도 있다. 이기의 선동 대신 이타(利他)의 설득(說得)을 큰 줄기로 한 샌더스식 사회주의가 글로벌 표준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실 샌더스식 사회주의는 미국과 한국 등 신자유주의를 신봉하는 나라에서만 낯선 모습이다. 유럽 대부분 나라들은 샌더스의 주장 가운데 상당 부분을 실제 제도로 이미 도입하고 있다. 청년들에게 지옥같은 나라라는 의미의 헬조선으로 전락한 우리나라도 샌더스의 열풍을 좀 더 면밀하게 분석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정책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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