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한 방에 훅 간다". 광고 문구에서나 볼 수 있을 정도로 가벼운 표현이 여당의 국회의원 선거 슬로건(slogan)으로 채택됐다. 정치적 이해를 떠나 현재 우리의 경제상황을 적확하게 진단한 표현 가운데 하나인 듯싶다.

주요 성장동력인 수출이 14개월 연속으로 줄어들고 소비와 투자도 가파른 속도로 감소하고 있다. 1천200조원을 넘어선 가계대출이 우리 경제위기의 도화선으로 작용하면서 18년전인 1998년 국제통화기금 (IMF) 관리체제의 악몽을 되풀이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수출 중심의 성장 패러다임은 무너졌다

일부 전문가들은 18년 IMF 관리체제 당시보다 지금이 더 엄혹한 상황이라고 한다. 18년 전에는달러-원 환율의 가파른 상승 등을 바탕으로 우리 제품을 해외에 팔 수 있는 여지라도 있었다. 당시 중국 등의 고속성장으로 우리 수출은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며 성장을 견인했다.

지금은 디플레이션에 버금가는 글로벌 경기 침체로 수출기업들이 고사하기 직전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대기업의 수출 감소세가 가속화되고 있는 데다 좀처럼 회복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수출은 지난해 1분기 -3.0%의 역성장을 시작으로2분기 -7.3%, 3분기 -9.5%, 4분기 -12% 등 가파른 감소세를 보인다. 수출의 경제성장 기여도도 지난해 1분기 -0.6%, 2분기 -1,2%, 3분기 -1.3%, 4분기 -1.5% 등 갈수록 떨어진다.

수출기업 부진은 기업들의 부채 증가로 이어지며 우리 경제의 핵심 뇌관이 되고 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심재철 의원(새누리당)에 따르면 2014년 12월말 기준 30대 그룹 소속 1천37개 대기업의 부채 총액은 1천740조원 규모로 전년대비 139조원이나 늘었다.수출 중심인 대기업들이 실적 부진이 고스란히 부채로 이어진 결과다. 2015년에도 가파르게 수출이 줄어든 탓에 실제 기업 부채는 더 큰 폭으로 늘었을 것이다. 일부 재벌그룹은 부채비율이 800%를 넘어서며 사실상 좀비기업들의 집합체로 전락했다.



◇가계부채도 금융이 아닌 실물 사이드에서 불거진다

1천200조원에 이르는 가계부채도 실물 사이드의 부진이 뇌관으로 작동할 것이란 우려가 많다. 우리나라는 아직 사회안전망이 취약하다. 기업의 실적 부진으로 고용이 악화되면 20년전 IMF 관리체제의 대량 실업 악몽이 되풀이될 가능성이 크다.

좀비기업들이 늘면서 고용은 좀처럼 호전될 전기를 찾지 못한다. 2014년 대기업 가운데 3년 연속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내지못한 좀비기업 비중이 14.8%에 달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한계기업 수는 대략 3천300개로 추정된다. 가계부채가 금융위기로 이어지는 뇌관은 기업 실적 부진에 따른 인적 구조조정이다.

가계부채의 절대규모도 숨겨진 부분까지 감안하면 심각하다. 개인사업자 대출 230조원과 전월세 보증금 533조원까지 감안하면 국민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25% 수준까지 치솟는다. 비정상적인 전세난에 따른 보증금 증가액도 130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부동산 침체 등으로 역전세난이라도 가시화되면 걷잡을 수 없는 금융위기로 이어질 우려가 짙다.

가계는 벌써 부채 상환으로 허리가 휜다. 작년 기준으로 가계의 가처분 소득 대비 부채 상환 지출 비율은 41.4%였다. 소득 100만원 가운데 41만원을 빚 갚는 데 쓰고 있다는 얘기다.

기업이 돈을 벌지 못해 인력을 구조조정하고 가계는 돈이 없어 소비를 하지 못해 경기불황이 지속되는 악순환의 고리가 완성되고 있다. 글로벌 경기 등을 감안하면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이러다 한 방에 훅 가는 건 아닐까.(정책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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