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을 재무부의 남대문 출장소로 여기던 경제관료들의 버릇이 도졌다. 돈을 더 찍어내라며 한국은행을 강하게 압박하고 나선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임종룡 금융위원회 위원장 등의 행태는 관치에만 익숙한 20세기 관료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한은의 발권력 동원이 왜 필요한지, 동원된 발권력을 어디에 쓸 예정인지 제대로된 설명도 없다. 기껏 내놓은 명분이 기업구조조정을 위한 재원 마련이다. 기업 구조조정은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 등으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8년이나 미뤘던 묵은 숙제다. 숙제를 미뤘던 장본인들이 돈을 안준다고 한은에 화를 내고 있는 것이다.



◇ 기업 구조조정하면 일자리 생기나

정부의 이런 행태는 느닷없고 후안무치하다. 기업 구조조정을 위해 정부 몫인 재정을 어떻게 활용할지 한마디 언급도 없어서다. 재정은 그동안 기업 구조조정과 일자리 창출 에 손을 놓고 있었다.

이제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재정을 투입하는 방안 등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게 우선이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기업 구조조정 자체가 아니라 일자리 문제이기 때문이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전체 일자리 2천만개 가운데 공공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5.6%에 불과하다. 공무원 100만명 공공부문 20만명 등 120만명이 전부다. OECD 평균은 20% 수준이다. 복지 선진국인 북구유럽은 이 비중이 30~35% 수준으로 올라간다.

OECD 평균을 감안하면 우리는 적어도 300만개 정도의 공공부문 일자리가 더 있어야 한다.



◇사회적 일자리 못늘린 일본은 잃어버린 20년에 허덕인다

OECD 국가 가운데 우리 다음으로 공공부문 일자리가 적은 나라가 일본이다. 일본의 전체 일자리 가운데 공공부문 비중은 6%에 불과하다.

일본은 재정으로 사회적 일자리를 늘리는 대신 SOC가 투자승수 효과가 높다는 이유로 나라 전체를 콘크리트로 도배를 했다. 일본은 '잃어버린 20년'을 극복하기 위해 260조엔에 이르는 천문학적인 돈을 SOC 등에 퍼붓고도 경기를 되돌리지 못했다.

일본은 복지체계와 공공부문의 고용비중 확대 보다 SOC 건설에 치중한 탓에 적정한 유효수요를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는 분석이 많다. 공공부문의 고용이 임금노동자를 늘려 경기진폭에 따른 충격을 흡수하는 유효수요로 작동한다는 점을 일본이 간과한 결과다.



◇필요하면 세금 더 걷자

OECD 회원국 가운데 한국의 조세부담률은 자린고비 수준이다. OECD 회원국 평균보다 10% 포인트 가량이나 낮다. 낮은 조세부담률은 재정정책 운신의 폭을 좁혀 청년실업 구제 등 미래 세대에 대한 투자 부족으로 이어진다.







2014년 OECD 회원국 전체의 평균 조세부담률은 34.4%로 역대 최고치다. 우리나라는 24.6%로 최하위 수준이다.

조세부담률이란 GDP대비 총세수(Total tax revenues)의 비율이다. 총세수에 세금이외에도 국민연금·의료보험료·산재보험료 등 사회보장금액(Social Security)이 포함돼 국민부담률이라고도 불린다.

한국은 통합재정수지 기준으로 OECD 회원국 가운데 유일한 흑자국이다. 거둬들이는 돈은 적은 데 수지를 맞췄으니 그만큼 덜 썼다는 의미다. 재정이 건전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회복지 전문요원, 구립체육관의 코치, 구민회관의 바이올린 선생님, 유치원 보육전담 선생님 등이 좋은 청년일자리가 될 수 있다. 필요하다면 OECD 최하위 수준인 조세부담률을 높여서라도 미래 세대에 대한 책임을 분담해야 한다. 조선,철강,석유화학 등 우리 주력 기업군들이 줄줄이 구조조정에 들어가고 있다. 당분간 민간 부문에서 일자리를 기대하기 힘들어졌다. 더 늦기 전에 공공부문에서 청년 일자리 대책이 세워져야 한다.(정책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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