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영어에서 "Shirtsleeves to shirtsleeves in three generation(셔츠 바람으로 시작해서 3대만에 도로 셔츠 바람으로).", 이탈리아어에서 "Dalle stelle alle stalle(뜰 때는 별, 질 때는 마구간)."이란 속담이 있다. 모두 부자 3대 안간다는 의미다. 그만큼 축적된 부(富)를 지키는 일은 힘들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선 한 번 부자는 영원한 부자로 남을 개연성이 갈수록 커진다. 조세제도와 부동산 정책 등이 부의 재분배 기능이나 취약계층의 보호보다 있는 자, 가진 사람들의 보호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는 탓이다. 특히 부동산 정책에서 가진 자에 대한 보호 장치는 과도하다 싶을 정도다.

우선 정부는 부동산 임대소득의 경우 2천만원이하까지 세금을 한푼도 내지 않도록 배려했다.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어야 했지만 그동안 부동산 경기 부양이라는 명분 등으로 임대소득에 대한 과세가 전면 유예됐다. 내년부터 과세가 이뤄지겠지만 월급 생활자의 세부담에 비해서는 '쥐꼬리' 수준이다. 월세 2천만원까지는 14%의 이율로 분리과세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임대소득의 60%가 필요경비로 인정되고 400만원까지 추가공제도 허용된다. 결국 임대소득 가운데 400만원만 14%의 세율을 적용받아 56만원의 세금만 내면 된다. 정기예금 이자율 연 2% 시대에 2천만원은 10억원 이상의 원금이 있어야 기대할 수 있는 엄청난 수익이다.

정부는 부자들의 부동산 가격 하락에 대한 헤지(hedge)정책까지 만들려 한다. 9억원 이상 고가 주택이나 주거용 오피스텔 소유자에게도 주택연금 가입을 허용할 방침이어서다. 주택연금은 상품특성상 주택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풋옵션과 유사하다(본보 4월4일자 '주택연금 ,무주택자가 9억 고액자산가 위험 부담 논란' 참조).

주택 소유자는 주택연금에 가입할 경우 현재 주택가격을 토대로 산정한 월 지급금을 보장받게 된다. 향후 주택가격이 일정수준 이상으로 오르면 차액이 상속자에게 돌아가는 반면 가격하락 시에는 가입 시점에 산정된 월지급액을 보장받는다. 기초자산의 가격하락 위험을 피하고 가격 상승에 따른 차익을 거둘 수 있는 '프로텍티브 풋(Protective put)' 전략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풋옵션 프리미엄(매입 대가)은 주택연금 가입자가 내는 보증료, 주택가치와 월지급액 총합의 차이로 볼 수 있어 부담이 작다. 주택연금이 일종의 복지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문제는 복지성격을 지닌 주택연금의 혜택이 고액 자산가까지 확대된다는 점이다. 주택연금은 주택가격 상승폭이 예상보다 작거나 가입자 수명이 예상보다 늘어 계약해지 시점 지급총액이 주택매각 처분가치보다 커지면 주택금융공사가 그 손실을 떠안는 구조다. 주택금융공사 자금으로 충당이 안 되면 정부 재정이 투입된다.

특히 고가 주택의 주택연금 가격 상승률이 2%로 설계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향후 논란이 가열될 전망이다. 향후 주택가격이 하락하고 기대수명이 늘어나면 다음 세대가 세금으로 주택연금 가입자의 연금액을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서울 강남의 59㎡(25평)짜리 아파트 가격이 10억원을 넘어섰다. 정부가 앞장서서 가격 하락을 막아주고 임대에 따른 세부담을 경감시켜준 덕이라 할 수 있다.

고액 자산가의 재산 지키기에는 발빠른 정부가 무주택자들의 주거문제 해결에는 거북이 걸음이다. 전세계에서 유일했던 전세 제도가 실종되면서 서민들의 주거비 부담이 폭증하고 있지만 마땅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일부 경제관료들은 "전세는 우리만의 독특한 제도로 없어지는 게 당연하다"고 주장한다.

그런 관료들에게 묻고 싶다. 세계에서 유일한 한국판 서민주거 안전장치인 전세제도를 없애서 자랑스러운가.(정책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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