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전 세계 기업 인수·합병(M&A) 시장이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미국의 컴퓨터 제조업체 델은 작년 10월 670억 달러의 거액을 들여 EMC를 인수했다. 같은 달 맥주회사 안호이저부시인베브는 SAB밀러를 인수했다. 덕분에 안호이저 부시는 '맥주공룡'으로 불릴 정도로 덩치가 커졌다.

독일 제약업체인 바이엘은 최근 미국 농업회사인 몬산토를 620억달러(74조원)에 인수하기로 했다. 몬산토가 헐값 인수라며 M&A를 거부하고 있으나 바이엘측이 추가 협상 의사를 밝히고 있어 딜(거래) 자체가 깨지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M&A 시장이 지나치게 과열된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정도인데 글로벌 채권시장에도 막대한 영향을 준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업들이 M&A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채권을 발행하면서다. 델과 바이엘, 안호이저부시 등 몸집 큰 기업들도 M&A 자금을 구하기 위해 모두 채권시장의 문을 두드렸다.

델은 200억달러(23조원) 규모의 무담보 채권을 발행해 글로벌 채권시장에서 사상 네 번째 규모란 역사적 기록을 남겼다. 델은 앞으로도 30억달러 이상의 정크본드를 더 발행해 인수자금을 댈 예정이다. 안호이저부시 역시 지난 1월 460억달러의 대규모 회사채를 발행했다. 회사의 지명도가 높은 만큼 '흥행 잭팟'도 터뜨렸다. 바이엘도 조만간 가세할 예정이다. 최소 50조원 이상의 채권을 발행할 것으로 보이지만 몸값 흥정에 따라 인수가격이 높아지면 채권발행 규모는 더 커질 수 있다.

글로벌 기업들이 채권시장을 활용하는 것은 자금을 구하는데 유리한 여건이 마련돼 있기 때문이다. 금리가 낮으면 일반적으로 채권값이 높게 마련인데, 일부 글로벌 중앙은행의 채권 매입 정책 때문에 비싼 값에도 채권을 사려는 수요가 있다. 사상 최저 수준의 금리 환경임에도 채권 매입 수요는 어느 때보다 강해 채권 발행자는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는' 효과가 있는 것이다.

특히 유럽중앙은행(ECB)이 대규모 양적완화를 진행하는 유럽에서 채권발행 기업이 늘어나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안호이저 부시는 지난 3월 132억유로 규모의 유로화채권을 발행했고, 바이엘 역시 유럽에서 채권을 발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채권값이 아무리 비싸도 ECB가 매입해주면 손해보지 않으니 투자자들도, 기업들도 모두 달려들고 있다.

이쯤되면 걱정스러운 생각도 드는 것이 사실이다. 지금의 분위기는 M&A 열기가 세계를 휩쓸었던 2006~2007년과 비슷하다. 미국의 저금리 기조가 오랫동안 지속되면서 시장에 유동성이 넘치게 되자 대형 M&A가 잇따라 발표됐다. 철강업계 1위인 인도 미탈의 아르셀로 인수(프랑스), 도시바의 미국 웨스팅하우스 원전 인수, 중국 차이나일렉트로닉스의 필립스(네덜란드) 휴대폰 사업부 인수 등 셀 수 없이 많은 기업들의 합종연횡이 있었다.

그러나 M&A 시장에서 나타난 유동성 파티는 '호황의 끝물, 위기의 시작'을 알리는 '탄광 속의 카나리아'와 같은 역할을 했다. 미국의 금리인상이 잇따르고 유동성 축소 국면이 진행되면서 세계 경제는 2008년에 큰 위기를 맞았다.

이번 M&A 열풍도 미국의 제로금리와 유럽·일본의 마이너스 금리로 형성된 유동성 파티에 경고음을 보내는 것일 수 있다. 2008년 위기가 주택시장과 주식·파생상품 시장에 낀 거품이 터지면서 발생했다면, 다가올 위기는 채권시장의 거품이 터지면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특히 투자자와 발행자가 모두 몰려들며 사상 최악의 거품을 형성하고 있는 유럽 채권시장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해야 한다. 올해 하반기 미국의 금리 정상화가 진행되고, 글로벌 금리 상승 현상이 나타난다면 유럽 채권시장이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국제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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