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지난주 국제금융시장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의 후유증으로 시름을 앓았다. 영국의 부동산 펀드 동결 문제가 불거지면서 주식과 환율, 채권 등 각종 가격 변수들이 롤러코스터를 탔다. 브렉시트의 공포에서 한숨 돌렸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여진을 완전히 탈출하진 못한 모양새다.

미국의 국채금리 10년물은 1.3% 수준까지 내려가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고, 일본 국채금리는 결국 20년물마저 마이너스권으로 추락했다. 시장참가자들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악재를 의식하며 위험자산을 던지고, 안전자산에 몸을 맡기고 있다. 미국과 일본 금리의 급락은 이 현상을 반영하는 징표다.

영국 부동산 펀드발 금융시장 불안은 과거의 학습효과에서 기인한 것이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의 시작점도 바로 펀드 환매중단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부실이 커지면서 펀드 부실화와 금융시장 붕괴 등 도미노처럼 사태가 심각한 국면으로 빨려 들어갔었다. 그러한 경험이 '이번에도 혹시' 하는 불안감을 일으켜 시장참가자들의 공포 심리를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

영국도 미국처럼 대형 금융위기를 겪는 것 아닌지, 정치에서 발생한 위기가 금융시장에 본격적으로 옮겨붙는 것 아닌지, 영국에서 유럽으로, 유럽에서 세계로 금융위기가 퍼져나가는 것 아닌지, 도이체방크를 비롯해 유럽 은행주들이 폭락하고 있는데 혹시 금융회사들이 위기에 연루된 건 아닌지, 시장에선 온갖 두려움과 궁금증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우리가 금융위기를 두려워하는 것은 현상을 정확히 모르기 때문이다. 2008년 미국 금융위기의 원인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때문이라는 것을 이제는 삼척동자도 다 알지만, 사태가 벌어진 당시에 그 원인과 결과, 전망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전문가는 없었다. 시간이 흐르고 숨겨진 부실 덩어리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나서야 뒤늦게 알 수 있었을 뿐이다. 그것을 시장이 인지했을 때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된 뒤였다. 모르는 것조차 모르는 것(unknown unknowns)이 바로 위기의 본질인 셈이다.

브렉시트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다. 따라서 앞으로 시장에 어떤 일이 생길지 아무도 모른다. 그것이 가장 큰 위험요소다. 영국 부동산 펀드의 환매중단 사태를 보더라도, 단순히 포트폴리오 조정을 위해 외국인 자금만 빠져나가는 것이라면 그것은 감당할 수 있는 위험에 그칠 것이다. 이미 알고 있는 위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8년에 그랬듯이 우리가 미처 파악하지 못한 부실이 드러나거나 생각지도 못한 파생상품과 연계돼 있다면, 그 위험의 파장은 훨씬 더 커질 수 있다. 또 시장에 충격을 줄 만한 '치명적인 포지션'이 있다면 사태는 예사롭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있다. 이는 아직 모르는 위험이기 때문이다.

지금 열거한 일들은 공상에 그칠 뿐 실제로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걸 확실하게 예단할 수 있을까.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두려움은 바로 이런 것이다. 채권을 비롯한 안전자산에 반영된 가격 변수는 이러한 두려움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바로 일어날 확률은 높지 않지만 일단 발생하면 큰 충격을 주는 '블랙스완'에 대한 두려움이다. (국제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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