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 먼저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2012) 얘기부터 해야겠다. 재정위기로 신음하는 그리스가 전문가의 예상을 뒤엎고 8강에 진출하는 이변을 일으켰다. 그리스는 직전 대회(유로 2008)에서 4강에 올랐던 강호 러시아를 꺾고 지옥의 조별리그(A조 2위)를 통과했다.

그리스는 앞선 두 경기에서 1무1패(승점 1점), 러시아는 1승1무(승점 4점)를 기록했기에 누가 봐도 그리스가 질 게 뻔한 경기였다. 예상대로 그리스는 러시아에 일방적으로 밀렸다. 그러나 전반 막판에 상대 실수를 틈타 얻은 단 한 골을 잘 지켜 1대0의 극적인 승리를 따냈다.

결승골을 넣은 요르고스 카라구니스는 "경제위기에 빠진 조국의 상황이 강력한 동기부여가 됐다. 그게 승리욕을 자극하는 요인이었다. 이번 대회 참가하기 전에 선수들끼리 모여 모든 걸 쏟아붓자고 다짐했었다"고 말했다.

운명의 장난처럼 그리스의 8강 상대는 독일로 결정됐다. 빚쟁이와 채권자의 외나무다리 대결이다.



# 그리스 축구는 자물쇠 축구다. 공격은 신경 쓰지 않고 수비에만 치중한다. 유럽의 강팀에 비해 전력이 약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전술이다. 러시아와 경기 때도 최전방 공격수를 제외한 10명이 골대 앞에서 진을 쳤다. 열릴 듯하던 그리스 골문은 결국 열리지 않았다.

그리스의 축구를 보면 유럽연합(EU)을 상대로 한 그들의 전략과 전술이 엿보인다.

-.'육탄방어 철통수비'는 유럽 강대국을 상대로 호락호락하지 않은 그리스 특유의 정신이 느껴진다.

-.절대로 골을 허용하지 않는 버티기 축구는 구제금융 조건을 놓고 벌인 벼랑끝 전술을 연상시킨다.

-.상대의 실수를 놓치지 않고 단 한방에 골을 넣는 모습은 기회를 잡았을 때 최대한 많은 것을 얻어내는 그리스의 협상 전략과 유사하다.

-.탈락이 확실시됐던 조별리그에서 극적으로 회생하는 걸 보면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에서 퇴출 위협을 받으면서도 꿋꿋이 자리를 지키는 모습이 오버랩(중첩)된다.



# 그리스 총선에서도 이변이 일어났다. 보수 우파인 신민당과 좌파인 급진좌파연합(시리자)가 팽팽한 접전을 벌일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신민당이 승리했다.

신민당의 예상확보 의석은 128석(비례대표 50석 포함)으로 사회당의 예상의석 33석과 합치면 161석이 돼 300석의 과반을 넘기게 된다.

이렇게 되면 연립정부를 구성할 수 있게 되고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걱정도 한 시름 놓을 수 있다.

그러나 국제금융시장에선 마냥 안심할 상황은 아니라고 본다. 정책을 추진력 있게 밀고 나갈 안정적인 연정 구성이 될지 아직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했으나 앞으로 연정 구성 협상 과정을 지켜보자는 분위기다. 연정 구성 이후 EU와 그리스의 의견조율도 안갯속이다. 단기적인 불확실성이 해소된 데 불과하다 게 국제금융가의 시각이다.

시야를 넓혀 유로존 상황을 보면 걱정거리가 태산같이 쌓여 있다. 그리스 말고도 스페인과 이탈리아에서 불안 신호가 나오고 있다. 큰 그림에서 보면 남유럽 국가들의 부실이 거대한 산처럼 버티고 있다.

악재 하나를 해결하면 다른 악재가 떠오르는 두더지 게임처럼 유로존의 혼란한 상황은 쉽게 진정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 그리스 총선 이후에도 국제시장에는 많은 이벤트가 대기하고 있다. 글로벌 정책 당국의 모임이 잇따라 열린다.

18-19일엔 멕시코 로스 카보에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이 열린다. 유로존 위기를 놓고 전 세계가 공조한 대책이 나올지 주목된다. 경우에 따라선 G7(선진 7개국) 재무장관 회담이 열릴 수도 있다.

19~20일엔 미국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회의가 있다. 국제금융시장 분위기에 따라 美중앙은행의 대응이 결정될 것이다. 오퍼레이션 트위스트를 연장하는 미세한 조치에 그칠지 3차 양적완화라는 강력한 부양책을 꺼낼지 지켜봐야 한다.

29일에는 EU 정상회의가 열린다. 재정통합과 은행연합 같은 방안들에 대한 의견을 조율할 것으로 보인다. 성장과 긴축을 놓고 독일과 프랑스의 논리싸움도 예상된다.

이에 앞서 21~22일에는 EU 재무장관들이 룩셈부르크에서 만난다. 그리스 총선 이후 시장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모임이다. 정상회의를 앞둔 실무적인 의견 교환의 성격도 있다. (국제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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