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기억상실증(Financial Amnesia)'은 금융시장 참가자와 금융당국이 과거 금융위기의 역사를 반면교사로 삼지 못하고, 같은 잘못을 주기적으로 되풀이함으로써 금융위기를 반복적으로 발생시킨다는 점을 비판하기 위해 만들어진 용어다.

영국의 공인재무분석사(CFA) 협회는 지난달 말 보고서를 내고 금융 기억상실증이 반복되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주된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협회는 보고서에서 "금융 기억상실증은 개인과 시장, 금융당국의 경계심을 무디게 해 리스크를 잘못 측정하게 하고 거품을 증식시키며, 위기가 터지게 한다"고 지적했다.

여기에는 금융시장 역시 망각에 빠져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개별 인간과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이 같은 생각은 지난 2006년 타계한 저명한 미국 경제학자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 하버드대 명예교수로 거슬러 올라간다.

갤브레이스는 지난 1994년 출간한 『금융 도취의 짧은 역사(A Short History of Financial Euphoria)』에서 금융위기가 비슷한 양상으로 재발하는 까닭을 사람들이 금융위기를 기억에서 쉽게 지워버리는 데서 찾았다.

그는 "금융 기억(financial memory)은 아무리 길어도 20년을 못 넘을 것"이라면서 "한차례 재앙에 대한 기억이 지워지는 치매가 발생하고 나면, 또다시 새로운 변수들이 마음을 사로잡게 된다"고 썼다.

금융위기가 금융 기억상실증 때문에 촉발된다는 생각은 누리엘 루비니 교수가 제시한 '화이트스완(White Swan)'과도 맞닿아 있다.

루비니 교수는 지난해 국내에서도 출간한 저서 『위기경제학』에서 금융위기는 예측하기 어려운 '블랙스완(Black Swan)'의 성격을 띠는 게 아니라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하얀 백조 같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루비니 교수는 금융위기의 역사를 살펴보면 화이트스완의 징후를 파악할 수 있으며, 미리 예방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영국 CFA 협회가 내놓은 처방도 루비니 교수의 생각과 닮았다.

이 협회는 금융위기의 재발을 막으려면 금융시장의 전문가들에게 금융의 역사를 의무적으로 공부하게 해야 하며, 투자 전문가 양성 과정에도 필수 항목으로 넣어야 한다는 다소 파격적인 대안을 제시했다.

협회는 금융기관의 이사회 구성원은 매년 '기억상실증 검사'까지 받을 것을 제안했다. (국제경제부 김성진 기자)

(서울=연합인포맥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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