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최근 통화량 관리를 둘러싸고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 사이에 묘한 냉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신제윤 기획재정부 제1차관이 통화량이 지나치게 많이 풀린 데 따른 부채 경제학으로 가계 부채 문제 등이 불거졌다고 진단했고통화량 관리 당국인 한은이 뒤늦게 반격에 나서는 모습이다.

포문은 신 차관이 열었다. 신 차관은 지난 19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개최된 한국국제경제학회와 한국국제금융학회 공동주최의 정책세미나에서 "통화량 증가가 부채증가로 이어지는 만큼 앞으로 통화정책은 통화량 관리를 강화하는 쪽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신 차관은 "거시건전성 정책도 보편적인 정책수단으로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신 차관의 이날 발언은 한은 금융통화위원회의 통화정책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으로 풀이됐다. 금통위 열석 발언권자인 재정부 1차관은 그동안 정부가 통화정책에 간섭하다는 오해의 소지를 차단하기 위해 관련 언급을 삼가했던 게 불문률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서울 채권시장은 신 차관이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은 '한은 금통위가 제 때 금리를 올리지 못해 지금의 가계 부채 문제가 불거졌다' 정도일 것 같다고분석했다.

한은 집행부는 신 차관의 발언에 대해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통화량이 늘어나 가계 부채가 늘어난 측면도 있지만 가계부채가 늘어 통화량이 늘어난 측면이 있는 데 신 차관이 이런 발언을 한 배경이 뭔지 의심스럽다는 게 한은 집행부의 대체적인 반응이다.

한은은 내부적으로 울분을 참지 못하면서도 공식적인 대응을 자제했다. 2010년 성장률이 6%대를 기록하는 등 높은 물가상승 압력에도 선제적인 통화정책 구사에 실패한 원죄가 있었기 때문이다.

잠잠할 것 같던 통화량 관련 논쟁은 일부 언론 보도에 대한 한은의 해명 자료를 통해 다시 확전 양상으로 치닫는 모습이다.

한은은 25일자로 보도된 매일경제신문의 '한은 이제 통화량도 살펴본다'는 제하의 기사에 대해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강한 톤으로 부인하며 신 차관의 발언에 대해서도 작심 반격에 나섰다.

한은은 "한국은행의 주된 정책수단은 기준금리 변경이지만 경기, 물가, 금융시장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유동성, 통화지표 등도 유의하여 살펴보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은은 또 " '물가안정목표제를 유지하면서도 통화량을 고려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든지 '특히 통화량 지표를 보조지표로 활용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내용은 전혀 사실과 다르다." 덧붙였다.

짧은 문장 속에도 통화량 관련 논쟁에 대한 한은 집행부의 울분과 회한이 반영된 것 같다는 게 채권시장 전문가 등의 분석이다.

그러나 일부 채권 전문가들은 "물가 당국인 한은 금통위가 제 몫을 다 하지 못한 데 따른 인과응보다"고 평가했다.

모 증권사 채권 애널리스트는 "금통위가 선제적인 금리 정책을 통해 거시금융 정책 운용의 절도와 규율을 강조했다면 정부로부터 이런 설움을 당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은 집행부는 물론 금통위원들 개개인은 통화정책에 대한 시장의 평가를 준엄하게 되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정책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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