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리먼브러더스 인수 소동, 대우조선 분식회계, 한진해운의 성급한 법정 관리행 등이 묘하게 오버랩된다. 우리 금융 당국과 금융기관의 가격 책정(프라이싱:pricing) 능력이 한심할 정도로 형편없다는 점을 고스란히 드러낸 사례들이기 때문이다.



◇ 리먼브러더스 인수하려던 산업은행

최근 다시 화제의 인물이 된 민유성 전 산업은행 행장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8년 하반기에 거덜난 리먼브러더스 인수를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산은 행장으로 오기 직전까지 리먼브러더스 서울지점 대표를 지낸 그는 한국이 금융 선진국으로 도약할 절호의 기회라며 인수를 위한 여론전을 펼쳤다.

굴지의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은 그의 행보를 주목했다. 글로벌IB 모두 손사래 칠 정도로 부실 덩어리로 전락한 리먼브러더스를 금융의 변방인 한국이 겁없이 인수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반면 글로벌 리딩 뱅크 HSBC는 다소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외환은행 매수에 공을 들였다. 서브프라임 사태로 잠재된 부실이 얼마인지 가늠하기도 힘든 리먼브러더스보다는 IMF 시련을 겪으면서 우량은행으로 거듭난 외환은행이 훨씬 좋은 물건이라는 이유에서다.

리먼브러더스 인수에 나선 우리의 행보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다룬 영화 'Too Big To Fail(대마불사)'에 소개될 정도로 세계적인 웃음거리가 됐다. 당시 리먼 경영진은 "한국이 인수할 수도 있을 것 같다"며 미국 금융당국을 상대로 최종 협상을 벌인 것으로 묘사돼 있다. 한국이 리먼브러더스의 부실을 고스란히 짊어지는 '호구'로 전락할 수도 있었다는 의미다.

산은 자체를 부실 금융기관으로 전락시킬 뻔했던 리먼브러더스 인수 소동은 당시 금융전문가들의 거센 반발로 없던 일이 되긴 했다. 리먼브러더스의 유럽 자산 일부만 인수한 일본의 노무라증권은 인수 8년만에 백기를 들었다. 경영이 힘들어진 노무라증권은 급기야 올해 초 대규모 감원을 선언했다. 우리는 리먼브러더스 전체를 인수하려 했다. 지금 생각해도 가슴을 쓸어내릴 일이다.



◇ 20년간 부채로 연명한 대우조선이 정상기업?

대우조선해양을 정상 기업으로 분류한 금융위원회 등 금융 당국과 산업은행의 프라이싱 능력은 도덕적 해이를 의심할 정도다. 재무제표 등 데이터에 기반한 판단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우조선해양의 분식규모가 2012년부터 2015년까지 5조원 규모라고 알려졌지만 수 조원 규모의 분식이 더나올 가능성이 있다. 금융기관의 피해액만 10조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본보 6월29일자 '<5분 재무제표> 대우조선 분식,대우중공업 판박이' 보도 참조)

대우조선해양은 지난 1999년 대우그룹이 해체되면서 대우중공업의 정상 우량 자산만을 도려내 정부와 산업은행이 대주주인 국민기업으로 재탄생했다.

하지만 대우조선해양은 2000년 우량자산으로만 재탄생한 뒤로도 2014년까지 총부채만 15조원이 증가했다. 한 해 평균 1조원에 이르는 차입 경영으로 목숨을 부지했다는 의미다. 회계사기→수주절벽(선수금 위기)→경영진 횡령 →국책은행과 정부 간의 책임공방의 중심인 대우조선해양이 정상기업이면 반짝이는 모든 것도 금이다.



◇ 해운업은 플랫폼 사업인데..

금융당국이 해운업의 특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한진해운의 법정관리행을 선언하면서 전 세계 물류 기지에서 배가 억류되고 화물이 제대로 내려지지 않아 화주들만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이 과정에서도 재무제표 등에 기준한 판단보다 대주주의 1회성 기여도 등이 반영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기고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현대상선 주식의 내재가치는 -5천528원, 한진해운은-1천897원이다. 내재가치를 기준으로 본다면 한진해운의 가치가 현대상선보다는 조금 더 높은 편이다. (본보 9월7일자 '<5분 재무제표>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위기' 참조)

채권단이 현대상선에 넘기겠다고 주장한 한진해운의 우량자산은 용선료 디폴트와 함께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 40년간 쌓아놓은 세계7위의 취항노선 네트워크는 정부가 그토록 육성하고 싶어하는 플랫폼 사업이다. 제대로 프라이싱하면 얼마나 될지도 모를 한진해운의 핵심 무형자산이다. 법정관리로 영업망이 붕괴되면서 이 핵심 자산이 훼손되고 있다.

무엇이 중요한지 판단하는 게 프라이싱 능력이다. 당국과 채권단의 어설픈 프라이싱에 추석 대목 밑 서민들의 삶만 더 팍팍해졌다. 요즘 유행어로 한 마디하자. "뭣이 중헌디, 뭣이 중혀"(정책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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