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고유권 기자 = #장면1. 2007년 1월 쿠바 정부는 새로 발행한 10디에즈페소(Diez pesos, 한화 약 1만8천원) 지폐 뒷면에 현대중공업의 이동식 발전설비(PPS) 도안을 삽입했다.

국내 대기업이 수출한 제품이 다른 나라의 지폐에 도안으로 들어간 것은 유일무이한 일이었다.

쿠바 정부가 이러한 파격적인 결정을 내린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2005년 쿠바 정부는 전력시설 부족으로 잇따라 정전사태가 빚어지면서 민심이 폭발 직전에 이르자 '에너지혁명(Revoucion Energetica)'으로 명명한 대규모 국책사업을 시작했다.

'쿠바를 밝혀라'를 슬로건을 내걸고 대대적인 발전 설비 확충에 들어간 것이다. 일본과 독일 등 내로라 하는 글로벌 발전설비 업체들이 모두 뛰어 들었다. 그러나 이 사업을 따낸 곳은 다름아닌 당시 발전설비 사업의 초년병과도 같았던 현대중공업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쿠바는 우리나라와 국교를 맺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현대' 특유의 부지런함과 성실성에 매료된 쿠바 지도자 카스트로의 마음을 움직였기에 이런 일이 가능했다. 외상거래가 관행화돼 있던 쿠바 정부는 이례적으로 공사 선수금까지 10%를 내 줄 정도였다. 현대중공업은 2005년부터 2007년까지 네 차례에 걸쳐 총 125만킬로와트(kW) 규모의 PPS 644기를 쿠바에 수출했고, 8억5천만달러를 벌었다.

현대중공업이 세운 발전소는 쿠바 수도 아바나의 전력 30%를 책임지고 있다. 현대중공업이 쿠바를 밝혀준 것이다. 쿠바 국민들이 가장 많이 쓰는 10페소 지폐의 도안으로 현대중공업의 PPS가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쿠바 지폐 뒷면에 '에너지혁명(Revolucion Energetica)'이라는 문구와 함께 현대중공업이 수출한 이동식 발전설비(PPS) 1세트가 그려져 있다>



#장면2. 지난해 3월 일본 동북부 지방을 강타한 쓰나미로 인해후쿠시마(福島) 지역의 원자력발전소가 잇따라 폭발하면서 일본은 극심한 전력난에 시달렸다.

각국 정부와 기업들의 지원이 잇따르는 가운데 일본 국민들의 생활에 보탬이 되는 눈에 띄는 지원 물품이 있었다. 현대중공업의 PPS였다. 현대중공업은 같은 해 4월 일본 지바현 이치하라시에 있는 도쿄전력 아네가사키 화력발전소에 PPS 4대를 설치했다. 총 발전 용량은 5천600kW로 지바지역 주민 1만가구가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규모였다. 일본 수도권 지역의 극심한 전력난을 해소하는 '가뭄의 단비'와 같은 존재가 됐다.

이렇듯 최근 수년간 발전기와 변압기 등을 생산하는 현대중공업의 전기전자사업은 나날이 커가고 있다. 조선과 플랜트를 주업으로 하는 현대중공업의 사업 포트폴리오에서 전기전자사업의 매출 비중은 그리 크진 않지만 성장세는 무척이나 빠르다.

지난해 현대중공업의 전기전자사업의 수주액은 20억달러를 넘었다. 태양광 부문의 매출 증가로 38억달러를 기록했던 전년과 비교하면 감소했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꾸준한 수주 증가세는 유지했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등 중동 국가의 전력 수요가 확대되면서 중동 지역에서의 수주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돼 신규 수주 가능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현대중공업 전기전자사업의 핵심인 변압기와 육상발전은 이미 세계 최고의 기술력과 시장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울산에 있는 변압기공장은 연간 12만MVA를 생산하는 체제를 갖춘 세계 최대의 단일 공장이다.

쿠바 지폐 도안으로 쓰인 PPS는 이미 글로벌 '히트상품' 목록에 올라있다. 설치와 이동이 간편할 뿐 아니라 원료 사용량도 크게 줄여 중동과 중남미 등에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각국 현지에 공장을 짓는 등 전기전자사업의 글로벌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미국의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시에 1억달러를 투자해 연간 200여대의 변압기를 생산하는 공장을 준공했다.

북미 지역과 중남미 시장까지 포함하는 세계 최대의 변압기 시장에서 선점하겠다는 과감한 포석이었다. 현대중공업은 1982년 이후 북미 지역에서만 1천500대 이상의 변압기를 납품해 왔다.

현대중공업은 또 국내 기업으로는 최초로 러시아에 고압차단기(GIS) 공장도 짓고 있다.

'현대일렉트로시스템'으로 명명된 이 공장에서는 연간 110∼500kV급의 고압차단기 250여대를 연간 생산하게 된다. 러시아 정부가 작년부터 전력시스템 현대화 정책을 펴자 전력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하고 현지 생산 체제를 갖추기 위한 투자였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러시아 연방전력청 발주 물량의 50%를 확보했다"면서 "공장이 완공되면 러시아 지역에서의 경쟁력이 한층 높아질 것이다"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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