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올해 15살, 몸무게 65㎏, 키 174㎝. 중학 2학년인 늦둥이 막내아들의 장래 희망은 가수다. 2지망은 TV 예능에 나가서 활약하는 입심 좋은 MC나 개그맨.

지난 주말, 아내도 바깥 볼일로 외출하고 없는 집에서 모처럼 만에 막내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한 일이었지만 종일 그의 일과와 동선을 구경하는 일은 새로운 체험이었고 당혹스러웠다.

막내는 학원을 다녀오고 나서 TV와 게임에 번갈아가며 몰입했다. 이후 최근에 배우기 시작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반복 후렴구가 중독성이 강한 가사였다. 인기 인디밴드 가수 버스커 버스크의 '벚꽃 엔딩'. 아이들과 소통의 출발은 잔소리하지 않는 것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하고 꾹 참았다. 이미 그는 엄마의 웬만한 잔소리에는 눈도 꿈적하지 않는 내공을 가졌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어떻게 아느냐고, 나도 그 시절에 어머니의 잔소리에 그렇게 유들유들했으니까. 기타 치며 노래하며 두 시간이 흘렀다. 거실에서 신문과 책을 뒤적이며 입안에서 잔소리가 뱅뱅 맴돌았다. 인내심이 거의 바닥이 날 지경이었다.

공부 좀 안 하냐. 책은 안보냐. 학생에게 방학이 어딨냐.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못한 탓이다. TV에 나오는 올림픽 출전 선수들, 불굴의 의지로 금메달 따는 것 보통 정신력으로 보이느냐. 이어폰 끼고 다리를 달달 떨며 아이스크림이 목구멍에 넘어 가냐. 끓는 태양 아래 농부들과 뜨거운 공장에서 땀 흘리는 근로자를 상기해라. 자기 주도로 할 수 있는 공부가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다. 그렇게 공부해서 강남 애들 쫓아 가겠냐. 나중에 커서 뭐 될래. 비록 아비는 월급쟁이 밖에 못됐지만 너는 훌륭한 사람 돼야지. 죽으나 사나 공부해라. 죽고 살기로 정진해라..

하지만 꼰대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불통(不通) 아빠라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이런 얘기는 끝까지 내뱉지 않았다.

필자 세대에게는 절박감, 자신을 끊임없이 내몰아치는 유전자가 영혼에 각인돼 있다. 자녀가 기타치고 노는 걸 지켜보는 게 어색하다. 대학시절 진지한 토론과 사회적 거대 담론에 익숙한 유전자는 사회에 진출한 이후 직장에 다니면서도 바뀌지 않았다. 조직 생활은 항상 심각했고 진지함의 연속이었다. 자신을 잠시라도 편안한 상황에 놔두는 걸 죄악시했다. 사람을 평가하는 잣대는 포기하지 않는 근성 여부였다. 모든 건 적극적으로 실행해야 하는 대상이었고, 관리가 되어야 직성이 풀렸다. 세상에 공짜는 없고, 자신의 성실과 노력만이 자신을 보호하는 살 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만족하는 방법을 배운 적이 없고, 앞만 보고 달리는 도그마와 엄숙주의 잣대로 아이들의 미래를 재단하는 시도가 언제까지 통할까라는 생각이 밀려왔다. 과거의 할아버지 아버지들이 그러했듯이, 앞으로의 달라진 자녀의 세상에서 무엇이 정답일지를 누가 알 수 있단 말인가.

오늘날의 시대는 이런 강박증보다 대신 마음의 여유가 훨씬 더 중요해지고 있다. 돌이켜보면 우리가 이룩한 것 중 절반 정도는 운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았고, 생각하는 것처럼 많은 것이 나 자신에게 달린 것만도 아니었다. 따라서 언제나 아무리 작은일이라도 웃을 만한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웃을 만한 이유를 찾을 필요가 있다.

입추(立秋)를 지나자 성난 태양이 한결 순해졌다. 막내와 주말을 보내면서 잔소리를 꾹 참았던 스스로에 칭찬해본다. 우리의 삶은 심각함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다는 것만 해도 운이 좋은 것이다. 가을 바람을 느끼며, 인생은 짧다, '잠깐 있다 가는 거니까 즐겁게 살아라'는 올해 86세로 작고한 어머니의 말을 곱씹어 본다.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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