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통화가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통화'라는 말이 가진 전문적인 그리고 기술적인 의미를 생각하면 특이하다는 생각도 든다.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의 변제수단으로 사용되는 지급기능이 있다는 점을 강조해 '통화'라는 말을 붙이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지폐인 은행권이나 동전과 같은 주화와 달리 실물이 없는 전자적 방식으로 기록되고 거래되는 점에서 '가상'이라는 말을 붙여서 쓴다.

가상통화만큼 긍정과 부정의 양극단을 넘나드는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도 드물다. 어떤 이는 첨단기술의 산물로서 발전된 기술과 금융의 결합을 통한 혁신적 지급수단 또는 핀테크의 상징물임을 강조한다. 또 다른 사람들은 지급결제라는 금융 본래의 기능보다는 불특정다수인을 대상으로 투기적인 거래를 유도하는 또 하나의 정체불명의 그 무엇이냐고 평가한다.

전면적으로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17세기 네덜란드를 휩쓸었던 튤립 투기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다.

법률상 통화라는 말은 신중하게 사용돼야 한다. 일반적으로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의 채무 이행을 위한 지급수단으로 사용되는 것을 통화라고 한다. 그러나 통화에는 국가가 강제통용력을 인정하는 법화 또는 법정통화와 거래에 참여하는 당사자들이 지급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에 합의하여 그들 간에만 사용되는 것이 모두 포함돼 있다. 강제통용력의 법적 의미는 채무자가 채무의 이행을 위하여 채권자에게 제공했을 때 채권자가 수령을 거부하면 채권자에게 그 채무가 이행되지 않았다는 결과에 대한 책임이 이전된다는 것을 말한다.

이를 법에서는 강제통용력이 있는 법화의 수령을 거부하면 채무자의 채무불이행이 아닌 채권자의 채권자지체가 된다고 표현한다. 당사자들 간에 지급수단으로 사용되는 것과 법률상 통화인 법화라는 것의 의미는 전혀 다른 것이다. 가상통화가 자금세탁이나 범죄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우려는 그러한 문제를 주로 살피는 국제기구나 국내 전문가들도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다.

일본에서는 가상통화를 거래하던 대표적인 거래소 운영회사의 파산과 함께 이용자보호에 대한 관심이 많이 늘어나고 있다. 일본이 그 어느 나라보다 빨리 가상통화에 대한 규제를 법률에 반영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달 초 국내에서도 대표적인 가상통화로 알려진 비트코인에 대한 최초의 판결이 이루어졌다.

몰수라는 부가형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라는 매우 제한적인 쟁점을 대상으로 한 것이지만 그 의미는 매우 크다.

법원은 (비트코인의 경우)현금과는 달리 물리적 실체 없이 전자화된 파일의 형태로 되어 있어 몰수의 대상이 되기에 적절하지 않다고 봤다.

법률을 공부하는 이들은 물론 가상통화에 관심이 있는 많은 사람이 이 판결을 두고 여러 가지 각도에서 다양한 분석을 하게 될 것이다. 새로이 등장한 거래수단이나 상품이 기존의 법과 제도에서 어떻게 취급돼야 할 것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그 법적 성질에 대한 판단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일본에서는 파산한 비트코인 거래소 운영회사의 파산관재인을 상대로 이용자가 자신의 계좌에 들어있는 비트코인에 대한 환취권을 주장한 사례가 있었다. 파산법상 환취권은 소유권에 근거하여 파산한 채무자가 보유하고 있는 자신의 물건을 돌려받는 수단이다.

결국, 비트코인이 소유권의 대상인 물건에 해당하는지가 문제가 된 것이다.

일본 법원은 이에 대해 "유체성이 없고 배타적 지배 가능성이 없다"는 이유로 소유권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판결했다.

국가마다 법률상 물건의 정의가 다르고 소유권을 바라보는 입장에도 차이가 있다.

그러나 가상통화를 바라보는 기본적인 법적 시각을 알 수 있는 좋은 참고자료가 된다.

유럽에서는 비트코인을 현금으로 교환해 주는 사업이 부가가치세 과세대상인지가 문제가 된 사례가 있다. 스웨덴에서 일어난 사건인데 유럽법의 해석문제라고 하여 최종적으로 유럽사법재판소에서 결정이 이루어지게 된다. 유럽사법재판소는 유럽연합(EU)의 부가가치세법상 비트코인은 금융업에 해당한다고 보아 부가가치세 비과세대상이라고 판단했다. 이 역시 일반적으로 모든 나라에 타당한 결론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고 각국의 세법체계에 따라 판단하게 될 것이다.

가상통화의 법적 성질을 파악하는 것이 규제의 방향을 설정하는 전제가 된다. 여러 나라에서 가상통화를 바라보는 시각은 그 나라의 법률·제도와 금융시장을 바라보는 관점을 반영한 것이다.

물론 각국에서의 논의 결과를 우리나라를 포함한 모든 나라에서 일반화할 수는 없다. 이 문제를 지급결제법이라는 관점에서 한정해서 보자.

가상통화는 새로운 지급수단으로 알려졌다. 가상통화가 지급수단으로 거래당사자 간의 자율적인 합의에 기초해서 사용되는 것을 금지할 이유는 없다. 이러한 사용은 어디까지나 사적 자치의 영역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적 규제의 대상으로서의 지급수단은 이야기가 다르다. 지금까지의 지급결제에 관한 법률은 국가가 강제통용력을 인정하는 법화인 현금을 비롯한 다양한 지급수단에 대하여 '발행자'를 전제로 규제체계를 만들고 있다. 그리고 현금이 아닌 지급수단에 대해서는 발행자가 가치를 보장하는 때에만 지급수단으로서의 이용 가능성을 법률로 인정하고 있다.

법률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이를 '지급수단으로서의 안전성 요건을 충족하는 때에만 지급수단으로서의 법적 지위를 인정한다'고 표현한다. 가상통화에는 지급책임을 지거나 가치를 보장하는 발행자가 없다. 만일 가상통화에 발행자가 있고 발행자에 의한 지급책임이나 가치보장이 이루어지는 경우에는 그 가상통화는 법률상 전자화폐나 선불지급수단으로 규제될 것이다.

가상통화를 무엇으로 보고 어떻게 규제할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 외국에서도 정답을 찾을 수 없다. 그만큼 새로운 현상이고 움직이는 목표물이다.

크게 보아 세 가지 방향으로 나누어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첫째, 가상통화를 '엄청난 돈을 벌 수 있는 안전한 투자수단'이라고 하여 불특정다수인을 대상으로 권유하는 것에는 제한이 있어야 한다. 국가가 보장하는 강제통용력이 인정되는 법화인 현금과는 다르다는 점이 분명히 설명되어야 한다. 새로운 투자 대상이 나타나면 기존의 규제제도가 자동으로 적용되는 것이 올바른 제도의 설계와 운용이다. 규제가 이렇게 작동되지 않으면 '입법의 불비'라는 말을 하게 된다. 그러나 가상통화와 같이 법적 성질이 규명되기 어려운 경우에는 단순한 입법의 불비라고 할 수 없다.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어느 법률에서 어떤 기관이 무슨 수단으로 이러한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지는 국회에서 정해 주어야 한다.

둘째, 가상통화 그 자체나 이를 대상으로 하는 영업행위, 그리고 자금세탁이나 그 밖에 범죄 목적으로 활용될 가능성에 대해서는 국제기구의 권고사항이나 외국의 입법례를 고려하여 규제방향을 설정해야 한다. 가상통화와 법정통화가 만나는 지점인 교환 업을 규제의 대상으로 할 수도 있고 그 범위와 대상을 더 넓게 잡을 수도 있다. 가상통화를 법률에서 규정하는 자체에 대해서도 우려는 있다. ‘법률상 인정된 상품 또는 수단’이라고 하여 투기적 거래가 많이 증가할 가능성을 우려하는 것이다.

셋째, 오늘날 가상통화를 가능하게 했던 기술적 기반, 특히 블록체인에 대해서는 가상통화 자체와 다른 관점에서의 접근이 필요하다. 현재의 금융거래 기반이 되는 기술인프라에 어떤 변화를 초래할 것인지에 대한 중립적 평가와 규제에의 반영이 필요할 것이다. 적극적인 논의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정순섭 서울대 법과대학 교수 / 現 금융위원회 비상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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