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요즘에는 '명문고'하면 강남 8학군 혹은 자립형 사립고등학교를 먼저 떠올리지만, 사실 배출한 인재로만 따지면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경성고등학교도 만만치 않다.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금융투자업계에 경성고를 졸업한 소위 '잘 나가는' 인사들이 적지 않다.

김남구 한국투자증권 부회장과 유창수 유진투자증권 부회장 등 증권사 오너부터 시작해서 윤경은 KB증권 각자 대표, 김태우 KTB자산운용 대표, 조규상 NH투자증권 트레이딩부문 대표 등이 모두 경성고 출신이다.

업권은 다르지만, 김기식 전 국회의원과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도 동문이다.

시험으로 학생을 뽑는 비평준화 고등학교도 아니고, 추첨제로 들어가는 일반고등학교에서 어떻게 이렇게 많은 인재를 배출해 냈을까.

그 의문은 학교 위치에서 풀린다. 경성고는 서울시 마포구 연남동에 위치한 사립학교다. 최근 '연트럴파크' 라고 불리며 뜬 지역 바로 옆이다.

강남 개발 전 서울 전통 부촌에 있다는 것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사실 설립 초기 경성고 졸업생 중에서는 크게 성공한 이가 없다. 초기에는 실업계 고등학교를 떨어진 학생들이 가는 인문계 고등학교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학교에서 사회 각계의 지도층을 배출해 낸 것은 약 10회 졸업생부터로, 박정희 전 대통령 집권 시기다.

이후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 등 군부 세력이 집권하며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했는데, 경성고는 그때 실세였던 전 전 대통령의 집이 위치한 연희동과 가까이에 있다.

당시 육군사관학교 출신 등 신군부 세력은 연희동과 연남동 등 서대문구 인근에 모여 살았다. 지리상으로만 보면 경성고가 당시 권력의 한복판에 있는 학교였던 셈이다.

경성고 설립자이자 교장, 이사장을 지낸 김병삼 장군 역시 박정희 정권 때 장관을 지냈던 이력을 갖고 있다.

이런 환경 덕분에 유력 집안 자제들이 많이 입학하는 학교가 됐고, 면학 분위기도 좋아졌다.

1984년, 1986년 두 번의 대입 학력고사(지금의 수능) 전국 수석을 배출하기도 했다. 1984년 전국 학력고사 수석을 차지한 황덕순 청와대 고용노동비서관도 경성고 출신이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부터 강남이 개발되면서 학교의 명운도 서서히 기울었다. 강남으로 사람들이 대거 떠났고, 남고인 경성고등학교에 여자 야간반이 생기기도 했다.

수십 년이 지나 졸업생들이 사회 주류를 이루게 된 지금, 경성고는 학교 이름만 그대로 남았을 뿐 홍익학원으로 재단 등은 모두 바뀌었다.

한 졸업생은 "장관 자제들 몇 명이 모두 같은 학교에 다니기 쉽지 않은데, 학교 다닐 당시에 장관 세 명의 자제가 같은 학교에 다니는 등 유력집안 자제들이 많았다"며 "서울대, 연고대 등 소위 명문대에도 한해에 수십 명씩 들어갔다"고 회고했다. (산업증권부 김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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