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연말연시에 주고받는 덕담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 최근 들은 덕담 중 유독 귀에 많이 들어온 것은 "현재를 담보 잡히고 살지 말자"는 말이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현재 누리고 즐길 수 있는 것들을 놓치지 말라는 뜻일 것이다. 몇 년 전만 해도 '부자 되세요', '대박 나세요'라는 말을 주고받았으나 어느새 사회 분위기가 달라진 게 느껴진다.

한때 부자 되기가 온 국민의 관심사가 되던 때가 있었다. 서점가엔 부자가 되는 여러 비법을 담은 책들이 유행처럼 번졌고, 각종 대중매체에선 돈 많이 벌어 행복하라는 메시지를 연신 보냈다. 그 비법은 '현재'의 희생을 기반으로 한다. 돈 허투루 쓰지 말고, 알뜰살뜰 저축해 종잣돈 모으고, 그 돈을 이리저리 굴리고 불려서 전세자금 마련하는 게 기본 코스다. 큰 맘 먹고 대출받아 아파트 1채 마련하는 사람은 그 중 성공한 축에 들 것이다. 갭투자에 성공해 2~3채 가지고 있으면 주위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았을지 모른다.

그 뒤엔 노후에 대한 준비가 유행이었다. '사오정(40~50대 정년퇴직), 오륙도(50~60대에 회사를 다니면 도둑)'라는 말이 유행하면서 퇴직 이후의 삶에 대한 불안이 소시민들의 뇌를 지배했고, 그 덕분에 각종 연금 상품이 불티나게 팔렸다.

한 집안을 꾸려가는 가장에게 가장 공포스러운 말은 '소득절벽'이다. 퇴직 후 소득절벽에 내몰린다는 것은 곧 가정의 붕괴와 같은 의미다. 그러한 가장은 집에서 쓸모없는 존재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몸서리친다. 집을 담보로 한 대출에 교육비까지 허리가 휘어지지만, 없는 돈 이리저리 쪼개어 연금까지 준비할 수밖에 없던 이유다. 즉, 현재를 저당 잡혀 미래를 준비하는 셈이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 나오는 명대사 Carpe diem(오늘을 즐겨라).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쉽게 실천하지 못하는 말이다. 매달 은행계좌에 꼬박꼬박 월급은 들어오는데 왜 나와 내 가족이 '지금' 쓸 수 있는 돈은 없는 것일까. 입고 싶고, 먹고 싶은 것을 왜 포기하고 미래를 대비해야 할까. 말 그대로 인생은 한번 사는 것인데, 현재의 우리는 당장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는 담보 잡힌 인생들이 아닐까.

미래에 대한 걱정은 끝이 없다. 그러나 그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당장 내일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데, 10년 뒤 20년 뒤 일을 어찌 알 수 있다는 말인가. 담보가 해제된 먼 미래에 부유한 노인이 되더라도 그 순간조차 우리는 마음 놓고 돈을 쓸 수 없을지 모른다.

알 수 없는 미래를 걱정하며 현재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을 포기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인가.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 최선을 다해 살며 당장 내일 죽어도 후회 없는 삶을 살아야 하는 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서로 "지금 바로 여기에서 행복을 찾으라"는 말을 주고받는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산업증권부장)

jang73@yna.co.kr

(끝)
저작권자 ©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