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미국 노동부가 발표한 1월 고용지표는 한 번에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은 듯하다. 그동안 미 연방준비제도(연준ㆍFed)를 당혹스럽게 했던 '저인플레이션 퍼즐'이 그중 한 마리이고 다른 하나는 주식시장이 큰 등락 없이 강세장을 이어오면서 오랜 기간 지속하여 온 '저변동성' 문제이다.

미 노동부는 1월 중 시간당 임금이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2.9% 올랐다고 발표했다. 이는 2009년 6월 이후 가장 큰 폭 상승으로 연준의 공격적인 금리 인상 우려를 불러일으키면서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주식시장을 주가 폭락의 소용돌이에 빠뜨렸다. 고용 호조가 물가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수치로 보여준, 어떤 경제 분석보고서 보다도 큰 의미가 있는 통계였기 때문이다.

미국 주식시장은 그동안 '저금리'와 '경기회복'이라는 쌍두마차에 힘입어 강세장을 지속해 왔다. 그런데 임금상승이 퍼지면 인플레이션 압력이 증대되고 연준의 금리 인상 속도가 빨라져 '저금리'의 말이 절름거릴 수 있다는 시장 심리가 주가 폭락사태를 가져왔다. 이후 주가 폭락이 변동성 연계 투자상품 관련 거래로 인한 일시적인 현상이라는 분석과 함께 개선 흐름이 지속하고 있는 세계 경제 여건을 고려할 때 바람직한 조정이라는 견해가 투자심리를 안정시키면서 진정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이어서 발표된 1월 중 미국 소비자물가도 시장 예상보다 높게 나옴에 따라 향후 물가 움직임에 대한 관심이 한층 더 높아졌다. 소비자물가 상승이 일시적인 요인에 의한 것이란 일부 주장도 있으나 미국 고용시장이 크게 개선됐고 경제도 견조한 성장 흐름을 지속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인플레이션이 급등하지는 않더라도 예전보다는 견고한 상승 추세를 보일 것이란 전망이다. 인플레이션이 수면 위로 부상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의미다.

사실 연준은 그동안 실업률이 자연 실업률을 하회하는 수준까지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임금상승으로 이어지지 않고 물가상승률이 연준 목표치(2%)를 훨씬 밑돌면서 금리정책 결정을 어렵게 하는 퍼즐에 직면했었다. 그런데 이번에 임금상승이 통계수치로 가시화되면서 이 퍼즐이 풀릴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시장에서도 3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의 금리 인상을 기정사실로 하는 분위기다.

연준 입장에서는 고용이 서서히 증가하면서 실업률이 4% 근처에서 꾸준히 유지되고 인플레이션이 목표 수준인 2%에 점진적으로 근접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시나리오라 할 수 있다. 시장에서는 향후 미국 인플레이션이 점진적으로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지만, 물가가 단기간에 급등할 경우에는 연준의 고민이 깊어질 수도 있다.

일부는 미 행정부의 세금감면 및 재정지출 확대, 미 달러화 약세, 수입물가 상승 등이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경계하는 눈치다. 최근 미 국채수익률이 급격히 상승하는 것도 부담이다. 연준이 강력히 부인하겠지만, 시장에서 금융시장 혼란 시 '연준 풋'의 재연 여부를 거론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2월 초 고용지표 발표가 도화선이 된 주가 폭락사태는 오랜 기간 평온하던 주식시장도 흔들어 놓았다. 주식시장의 '공포지수'로 불리는 VIX(Volatility Index)는 오랜 기간 10 초반대의 이례적으로 낮은 수준을 지속하고 있었다. 그러나 고용지표 발표 이후 장중 한때 최고 50.3까지 치솟았고 20~30 수준에서 등락하다 현재는 19 중반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VIX는 S&P500 주가지수 옵션의 내재 변동성을 이용하여 연율 기준 백분율(%)로 산출되는 변동성 지수다. S&P500 주가지수의 향후 30일간 변동성에 대한 시장의 기대를 나타낸다. 만일 VIX가 50(%)이라면 시장에서는 S&P500 지수가 향후 30일간 상하 14.43%(=50%/) 범위 내에서 등락할 것으로 예상한다는 의미이다.

VIX가 이론적으로는 시장 방향성과 무관하다고 하나 역사적으로는 S&P500 지수와 역관계를 유지해왔다. 단기적으로 VIX가 급등할 때에는 투자자들의 불안심리가 높아져 주식을 매도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통상 하락장이 들어선다. VIX가 주식시장의 '공포지수'라 불리는 이유다.

지난 2주 동안 주식시장 변동성이 확대되면서 글로벌 주식시장의 시가총액은 약 5조 달러나 감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거래소가 세계거래소연맹 통계를 인용,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세계증시 시가총액은 2017년 기준 85조3천억 달러에 이른다.

글로벌 주식시장은 그동안 중앙은행이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응하기 위하여 극약 처방으로 투여한 저금리와 양적 완화라는 진통제에 중독되어 현실 안주라는 수면상태에 빠져 있었다. 급격한 변동 없이 꾸준한 상승세를 이어오면서 큰 힘 들이지 않고 이익을 향유하였고 일부는 금융위기 이전의 '대안정(Great Moderation)' 시대를 다시 맞았다고 할 정도로 평온한 상태를 유지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VIX가 한 때 10 아래로 떨어지자 주식시장이 평온을 넘어 폭풍 전야 상황으로 빠져들었다며 향후 다가올지 모를 대혼란에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그런데도 평온한 주식시장과 현실 안주에 익숙해진 일부 투자자들은 변동성 매도(short volatility)와 같은 낮은 변동성 전망에 기초한 변동성연계상품 투자를 확대해 나갔다. 이번에 주식시장 변동성이 급격히 확대되면서 대규모 손실은 본 것은 당연한 귀결이고 주식시장 폭락사태에 기름을 붓는 요인으로도 작용했다. 주식시장 변동성의 복귀를 알리는 의미다.

인플레이션과 변동성의 복귀에 대해서는 논란도 있다. 한 축은 이들 복귀의 근거에 대한 문제이고 다른 한 축은 이들 복귀가 시장에 미칠 영향에 대한 사항이다.

일부에서는 1월중 시간당 명목임금과 소비자물가의 상승은 일시적인 요인에 의한 것으로 인플레이션이 본격화될지는 두고 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시장의 인플레이션 기대가 다소 강화됐고 실업률 및 취업자수 호조, 그간 부진하던 임금 상승세 확대 등 고용도 지속적으로 개선되고 있어 물가 오름세가 점차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단기적으로 급등하지는 않겠지만 점진적인 상승세를 보이는 것이 현 경제 상황에 비추어 정상적인 모습으로 여겨진다.

주식시장의 변동성이 그동안 평온을 유지해 온 것도 이례적인 현상으로 봐야 할 것이다. 금년 중에도 주요국의 통화정책 정상화 추진, 보호무역주의 강화, Brexit 협상 지연, 중국의 신용불안, 중동지역의 정정불안 등과 관련된 불확실성이 잠재해 있는 만큼 변동성이 확대될 소지가 큰 것으로 판단된다.

이달 초 임금상승으로 촉발된 세계증시의 주가 폭락사태는 그 자체보다는 인플레이션과 변동성의 전환에 더 무게를 두고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인플레이션과 변동성의 복귀는 기본적으로 세계경제의 정상화 과정이라는 점에서 바람직한 현상이라 판단된다. 이들의 복귀는 그동안 시장의 어깨에 짊어지고 있던 짐을 덜어내는 효과와 함께 저금리와 양적완화의 환경 아래서 수면을 취하던 시장참가자들을 깨우고 시장이 합리적으로 운영되도록 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

다만 그동안의 수면상태가 오래 지속되었던 만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데도 다소간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예상외의 인플레이션 급등으로 인한 중앙은행의 통화긴축 가속화 등 시장이 아직 소화해 내기 어려운 예기치 않은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시장이 새로운 환경에 대한 적응력을 높이려는 자구노력이 최우선으로 중요하고 정책당국도 이러한 예기치 않은 상황 발생에 대한 시나리오와 대처방안을 사전에 마련할 필요가 있다.

파월 연준 의장은 취임식에서 연준은 단기적인 정치적 압력에 구애받지 않고 통화정책 목표를 추진할 수 있도록 의회로부터 독립성을 부여받았다고 언급했다. 아울러 현재 기준금리와 대차대조표를 점진적으로 정상화하는 과정에 있다고 밝히는 한편, 연준의 금융시스템 안정 및 금융규제·감독 책임도 강조했다.

3월 FOMC 회의에서의 금리인상 결정과 함께 현 경제상황에 대한 연준의 인식을 엿볼 수 있는 정책결정문과 의사록의 내용이 기다려진다.(홍택기 글로벌투자전략연구소장 / 前 한국은행 외자운용원장)

(끝)
저작권자 ©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