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은 새로운 상품이나 수단 또는 기법을 통하여 삶에 많은 변화를 일으킨다. 그러한 변화는 대부분 인류의 문명에 이바지하려는 긍정적 의도에 따라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중에는 결과적으로 인류의 삶을 힘들게 하거나 해악을 끼치게 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 결과 우리는 새로운 기술발전의 결과물에 대해 확신을 하거나 최소한 익숙해지기 전에는 불안해하거나 경계심을 가지게 된다. 금융상품의 경우에도 같은 과정을 거쳐 왔다.

아직도 많은 사람이 불안감을 가지거나 최소한 경계심을 가지는 대상으로 장외파생상품을 들 수 있다. 최초 위험관리상품으로 만들어졌지만 때로는 투자상품으로 인식되어 큰 규모의 경제적 손실을 발생시켜 사회 경제적 문제가 되기도 한다. 위험의 확대 재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수단으로서 헤지펀드와 함께 장외파생상품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주된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장외파생상품이 처음 등장한 시기와 관련하여 고대 중동지역의 원시적 거래형태를 최초의 사례로 드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현대적인 의미의 장외파생상품은 1970년대 초 브레턴우즈 체제의 붕괴로 인한 변동환율제의 도입에 따른 환율위험헤지 필요와 함께 등장한 것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금융상품으로서의 장외파생상품이 처음 등장한 때에는 경제적 기능에 대한 논란과 함께 법적인 관점에서의 성질결정도 쉽지 않은 과제였다. 위험관리기능과 구조를 보면 보험에 가까운 측면도 있다. 장외파생상품이 나타나기 시작한 때부터 계속된 것이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장외파생상품을 보험규제의 대상으로 하자는 주장도 강하게 제기됐다.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초, 영국이 금융위기의 극복과정에서 지방자치단체의 자금조달을 제한하자 이를 회피하기 위한 시도로 스왑거래가 이용되기도 했다. 금리스왑에서 고정금리 부분을 거래 일자에 할인하여 일시에 받는 구조를 취한 것이다. 이에 대해 1991년 당시 영국의 최고법원인 상원은 지방자치단체는 스왑거래를 할 수 있는 권리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거래를 무효로 한 바 있다. 권리능력은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자격을 말한다. 권리능력이 있어야 거래로부터 발생하는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2000년대 초반 일본에서는 장외파생상품의 일종인 외환증거금거래를 도박으로 판단한 사례가 있다. 장래의 우연한 사실의 성부에 따라 재산적 이익을 지급하는 자와 그 금액이 결정되는 도박과 장외파생상품은 그 기능과 구조의 양면에서 매우 유사한 특징을 가진다.

장외파생상품이라는 '새롭고 생소한 거래에 대한 불안감과 경계심'이 많은 법률상 문제로 표현된 것이라고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장외파생상품이 등장한 초기에는 이를 규율하는 명시적인 법률이 없었다. 이 또한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사회적 합의에 따라 이루어지는 신중한 절차인 입법이 매우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금융시장의 속도를 따라잡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법적 규율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거래자들은 그들 사이에 체결되는 계약서에 필요한 내용을 규정하여 문제 해결을 시도할 수밖에 없다. 그 내용은 담보와 같은 당사자의 신용관리를 위한 사항, 대상거래의 구조와 위험을 알리기 위한 사항, 결제에 관한 사항, 당사자 중 일방이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경우의 대응에 관한 사항 등을 담게 된다.

장외파생상품에 관한 입법이 이루어지게 되면 이러한 계약 내용의 일부나 전부가 법률에 규정되게 되는 것이다. 예컨대 대상거래의 구조와 위험을 알리기 위한 사항은 자본시장법상 설명의무로 규정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장외파생상품에 관한 청산기관을 통한 청산이 의무화되면서 결제에 관한 사항 중 일부와 증거금 제공에 관한 사항도 법률에 규정되어 강제력을 확보하게 되었다. 이와 함께 법적 확실성을 높이는 데 필요한 입법도 이루어진다. 장외파생상품은 형법상 도박죄는 구성하지 않는다거나 당사자의 신용위험감축을 위한 일괄청산네팅은 도산법상 유효하다는 등의 규정이 이에 해당한다. 장외파생상품거래를 할 수 있는 주체도 명시하게 될 것이다.

물론 금융상품으로서의 장외파생상품의 경제적 기능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있다. 그러한 논의는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하고 그러한 논의의 결과는 법률과 규제에 반영되어야 할 것이다. 최근 금융과 기술의 결합을 의미하는 핀테크의 산물로 다양한 종류의 새로운 금융상품이나 거래수단 또는 거래기법이 등장하고 있다. 각각의 상품이나 수단 또는 기법이 가지는 경제적 기능에 대해서는 다양한 평가가 존재하게 될 것이다. 핀테크의 결과물 중 상당수는 중개기관의 존재를 본질적 요소로 하지 않는 구조를 취하기도 한다.

이러한 구조는 금융기관을 규제대상으로서의 금융의 본질적 요소로 하는 현재의 규제시스템과 충돌하게 될 것이다. 그중 일부는 장외파생상품이 거쳐 온 것과 같은 과정을 거쳐 법적 지위를 확보하게 될 것이다. 물론 또 다른 일부는 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것은 새로운 기술적 산물에 대한 평가의 기회는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아서는 시장의 자유로운 형성과 발전을 막게 될 것이다. (정순섭 서울대 법과대학 교수 / 現 금융위원회 비상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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