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금융 민원인이든 유관 단체 관계자든, 아니면 개인적인 친분이 있든 금융당국 관계자를 만나 행정서비스 편의를 받고자하는 사람들은 앞으로 기록으로 남게 되고 금융당국의 관리대상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최근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금융행정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높인다면서 소속 공무원과 임직원 등이 지켜야 할 '외부인 접촉관리 규정'을 마련했다. 이 규정을 만든 취지는 금융행정 수요자 간의 불필요한 접촉을 방지하고 건전한 소통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라는 게 금융당국의 설명인데, 다른 의미로 해석하자면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행정당국에서 관리하겠다는 것과 같은 얘기로도 들린다.

이번 규정은 지난해 12월 금융행정혁신위원회가 "금융당국 소속 공직자의 외부 이해관계자 접촉에 대한 체계적인 대응방안을 마련하라"고 권고한 데 따른 것으로 내달 17일부터 2주간 시범 운영한 뒤 미비점을 보완해 오는 5월 1일부터 정식 시행한다고 한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은 객관적이기보다 주관적 판단이 지배할 수밖에 없는 데 금융당국 관계자가 외부인을 어떤 식으로 평가할지 만나는 거 자체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더욱 문제는 리스트의 기록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어떤 내용인지는 행정 민원인이나 금융당국 관계자를 만난 당사자는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오로지 금융당국 관계자가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보고한 내용에 따라 그와 만난 사람의 행동과 품위, 평판이 결정된다. 해당 기록을 통해 금융위원장 또는 금융감독원장이 해당 외부인과 1년 이내 접촉 금지 명령을 내릴 수도 있다. 접촉금지 명령 대상자는 평생 소속 조직에서 주홍글씨를 달고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해당 규정의 문제는 외부인의 청탁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 데 있다. 이 때문에 금융당국이 새로운 제도와 규정을 만들려고 할 때 전문가들로부터 업계와 입장과 시각, 또는 전문성을 제공받기 어려울 수 있다.

금융당국의 외부인 접촉 보고 의무가 청탁을 배제하기 위한 안전장치가 될 수 있을지, 아니면 사람과 사람 만남을 통제하고 감시하는 도구로 이용될지 기대 반, 우려 반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금융권 관계자들은 이번 금융당국의 외부인 접촉관리 규정이 만들어진 이유를 먼저 따져보고, 오히려 금융당국이 반성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은행권의 한 임원은 "행정당국이 시장의 목소리를 경청하지 않고, 탁상행정을 하기 때문에 금융권 입장에선 당국자를 만나 설명하고 업계를 이해시키려는 시도가 많을 수밖에 없다"며 "이를 청탁으로 받아들인다면 (금융당국의)탁상 행정은 더욱 공고해질 것이고, 결국 그 피해는 금융소비자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책금융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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