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남과 북의 정상이 11년 만에 다시 마주앉게 됐다.

'평화, 새로운 시작'을 표제로 정한 이번 남북정상회담의 주요 의제는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정착, 남북관계 개선 등으로 나뉜다. 이중 대한민국 국민과 전 세계인의 관심은 당연히 한반도 비핵화 의제다. 남북정상회담에서 북측이 비핵화의 의지를 재확인시켜주고, 이어질 북미 정상회담에서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에 관련국이 합의를 이뤄낸다면 한반도는 (핵)전쟁 위협 없는 평화의 분위기가 그 어느 때 보다 고조될 것으로 전망된다.

남북이 평화의 길을 모색한다면 금융시장도 지긋지긋하게 따라다니던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꼬리표를 떼어내고 펀더멘털을 오롯이 반영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남북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된다 하더라도 당장 금융시장에 훈풍이 불어올 것이라는 낙관론은 피해야 한다. 우리 금융시장을 둘러싼 변수가 그리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우선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가 3%를 넘나들면서 국내 주식시장과 외환시장, 채권시장 등에 전방위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여기에 중동의 지정학적 불안과 연일 계속되는 유가 상승 움직임도 우리 금융시장에 우호적이지 않은 재료다. 잠시 숨죽이고 있는 무역전쟁의 포화도 언제 다시 들려올지 모른다.

지난 나흘간(23~26일) 주식시장에서 빠져나간 외국인 자금만 2조원이다. 미 금리 상승으로 머니무브가 이뤄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게 하는 대목이다.

최근 국고채 금리도 오름세다. 이 또한 미 국채 금리가 3%를 돌파한 데 따른 부담과 외국인의 국채선물 순매도가 반영된 탓이다.

북한 재료에 가장 민감한 외환시장은 오히려 북한리스크가 완화됐음에도 불안정한 모습을 이어가고 있다. 원화 가격은 연일 하락세를 타며 어느덧 달러당 1,080원 선을 넘어섰다. 남북 해빙 무드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한반도 평화'라는 이슈가 금융시장에 악재가 아니라는 점은 누구나 알고 있다. 언제일지 모르나 분명 금융시장에 긍정적인 재료로 반영될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마치고 오는 5월 말이나 6월 초·중순으로 예고된 북미 정상회담에서 우리가 모두 기대한 한반도의 비핵화가 가시화된다면 그간 국제신용평가사가 대한민국의 신용등급 결정 과정에서 언급해온 전쟁위협과 이에 따른 부정적 등급 전망은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많은 금융시장 전문가들은 남북 화해·협력이 구체화하고 이에 맞춰 우리나라의 국가신용등급이 상향 움직임을 보여줄 때 비로소 국내 금융시장에 훈풍이 본격적으로 불어올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현재 3대 국제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와 무디스, 피치는 우리나라의 신용등급을 각각 'AA'와 'Aa2', 'AA-'로 평가하고 있다. 금융시장은 일단 오는 6월 예정된 무디스의 신용등급 발표를 주목하고 있다. 북미 정상회담 결과까지 지켜본 뒤 나오는 신용등급 발표다 보니 시장에서 갖는 의미도 그만큼 크다고 할 수 있겠다.

신용등급 상승은 해외에서 빚을 낼 때도 비교적 낮은 가산금리를 적용받아 경제 주체의 부담을 덜어줄 뿐 아니라 국가신용등급에 따라 투자비중을 정하는 투자은행(IB), 해외 연기금의 추가 자금 집행으로 이어질 수 있다.

여하튼 남북이 '대결'에서 '평화'로 관계 설정을 재정립하려는 역사의 변곡점 앞에서 금융시장도 적지 않은 변화를 맞을 것은 분명하다. 시장 참가자들은 물론 정부도 모처럼 찾아온 남북 화해 무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우리 금융시장을 한 단계 도약시키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준비된 자만이 기회가 찾아왔을 때 과실을 얻는다고 하지 않던가. 그러려면 정부는 낙후된 금융 규제를 새 틀에 맞게 고치고, 각종 규제는 속도감 있게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금융시장 종사자들도 국내외 투자자들에게 신뢰를 얻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조금은 아프고 불편해도 뼈를 깎는 혁신을 주저해선 안 된다는 얘기다. (정책금융부 부장)

sglee@yna.co.kr

(끝)
저작권자 ©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