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우리 태극전사들이 세계 최강 독일을 2대0으로 무너뜨린 경기일 것이다.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이 대결은 '세상에 영원한 강자는 없다'는 진리를 새삼 일깨워 준다. 2014년 막강한 전력으로 상대를 무너뜨리던 독일이 한순간에 동네북처럼 몰락하고, 2010년 압도적 전력으로 상대를 농락하던 스페인이 다음 월드컵에서 처참하게 무너진 것은 스포츠계뿐만 아니라 경제계에도 많은 시사점을 던진다.

절대 강자의 몰락은 과거의 익숙한 방식을 고집하는 데에 원인이 있다. 어렵게 찾은 성공의 모델을 쉽게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혁신 없는 안주는 곧 실패로 귀결된다. 월드컵의 역사가 보여주듯 세계의 유수한 기업들이 과거의 유산을 껴안고 변화의 흐름을 외면하다 한순간에 몰락한 사례가 많다.

2000년대 세계 휴대전화 시장을 호령했던 노키아는 스마트폰 등장이라는 세계적인 변화를 외면한 채 피처폰만 고집하다가 사양길에 접어들었고, 전자왕국 소니도 삼성전자의 강력한 도전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몰락의 길을 걸었다. 필름의 대명사인 코닥은 디지털카메라의 출현을 과소평가하다가 파산하고 말았다. 최근 다우존스 산업 평균지수에서 퇴출당한 제너럴일렉트릭(GE)은 어떤가. 본업인 제조업을 등한시하고 금융과 방송, 의료 쪽으로 문어발식 확장을 하다가 성장의 한계에 도달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러한 글로벌 기업 몰락의 역사는 우리 기업들에도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 과거 1등을 자랑하던 우리 산업은 이미 몰락했거나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조선과 해운이 그렇고, 휴대전화와 자동차가 그렇다. 특히 금융의 과실에 취해있다가 본업인 제조업의 몰락을 맛본 GE를 보면서 반도체 호황의 착시에 빠져 한국 경제의 어두운 면을 보지 못하는 우리 자신의 모습이 오버랩되는 것 같아 씁쓸하다.

외환보유액이 사상 처음으로 4천억달러를 넘겼지만, 이는 우리 경제의 체력이 좋아서 얻은 결과물이 아니다. 반도체 호황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수출이 호조를 보이면서 다른 제조업의 부진을 상쇄한 덕분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더욱 걱정인 것은 해외의 유명 기업들은 살아남기 위해 변화와 혁신의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데, 우리 기업들은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업가들은 지나치게 조심스러워졌고,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보이지 않는다. 정부의 각종 규제와 사정 칼바람에 위축돼 있어서 그런지 모르겠다.

정부도 나름대로 노력은 하고 있지만 무얼 해야할지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장하준 교수가 "선진국은 안 하는 척하면서 연구개발 지원, 장기금융 지원 같은 산업육성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도 가능한 수단을 총동원해서 보호해야 한다"고 말한 것을 우리 당국자들은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정체하는 것이고, 그것은 곧 몰락의 길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방향을 제대로 잡고 완벽하게 준비해도 모자라는데, 가만히 서서 네 탓 내 탓만 한다면 우리 경제의 미래가 어떻겠는가.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 터지고, 유럽연합(EU)까지 가세하는 등 확전양상을 보이는 가운데 우리는 내부에서 서로 총질만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산업증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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