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레포(Repo:이하 RP)가 단기자금시장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지난 주말 RP 1일물 금리가 40bp나 뛰는 등 이상 징후가 자주 나타나고 있어서다.

RP는 환매 조건부 채권(repurchase paper)을 일컫는 금융시장 전문 용어다. 금융기관이 일정기간 후에 다시 사는 조건으로 채권을 팔고 경과 기간에 따라 소정의 이자를 붙여 되사는 채권이다. '환매채'라고도 한다. 채권투자의 약점인 환금성을 보완하기 위한 금융상품이다.

◇RP시장 급성장…자산운용사 레버리지펀드 위한 금리 갭핑 수단

대부분의 나라에서 중앙은행과 예금은행 간의 유동성 조절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중앙은행인 한국은행도 시중 유동성 조절수단으로 활용하는 시장이다. 국내 RP 시장은 최근 10년간 눈부신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기관 간 장외 RP 시장은 평잔 기준으로 10년 전 4조원 수준에 그쳤다. 5년 전에 25조원 수준으로 성장한 RP 시장은 지난해 64조 원 규모의 평잔을 기록할 정도로 커졌다.

채권을 담보로 하는 RP 시장은 신용리스크에서 자유롭다. 최악의 경우 담보채권을 매각을 통해 자금을 회수할 수 있어서다. 평온했던 RP시장은 자산운용사의 RP 레버리지펀드가 빅 히트를 치면서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해당 상품은 RP를 이용해서 레버리지를 많게는 4배까지 일으키는 금리 갭핑 상품이다. 이를 위해 자산운용사들은 RP 시장에서 매도 비중을 높일 수밖에 없다. RP 매도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자산운용사 비중은 2013년에 5% 수준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에는 30% 수준까지 폭증했다.

자금조달 혹은 차입을 의미하는 RP 매도는 증권사가 전체의 57% 수준을 기록할 정도로 압도적이다. 자산운용사도 최근들이 그 비중이 더 늘어 32% 수준까지 올라온 것으로 알려졌다. 자금을 공급해주는 RP 매수는 은행(고유) 19%, 은행신탁(MMT) 25%, 자산운용사의 MMF가 31% 수준인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자금조달 사이드인 증권사와 자산운용사는 RP 1일물을 선호한다. 단기유동성이 풍부한 상황에서 굳이 높은 금리를 물고 기간물을 거래할 유인이 없어서다. 자산운용사 등은 1일 단위로 자금을 조달해 기간물로 운용하는 방식으로 금리 갭핑을 얻을 수 있는 셈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도 단기자금 경색에서 출발…당국자들이 미리 점검해야

평온하던 RP시장도 은행권의 유동성에 경색이 오면 사정이 달라진다. 자금공급원인 MMT가 연결회계 이슈 등으로 자금을 회수하면 전체 RP 시장의 자금 공급이 10%가량 줄어들어서다. 은행(고유)가 부족분을 메워주면서 살얼음판 단기자금시장이 겉으로는 평온안 상태를 유지하는 듯 하다. 하지만 정부 사이드의 국고자금 회수 등 이슈가 발생하면 은행권도 유동성 경색을 겪을 수 있다. 이때 자체신용조달이 불가능한 자산운용사의 펀드가 단기자금 부족에 시달리게 된다.

실제 지난 1분기 말에 이어 지난 4월에도 지준일을 앞두고 일부 운용사는 부도위기에 내몰리기도 했다. 한은이 전격적으로 자금을 풀어 극적으로 마무리되면서 부도사태를 면했지만, 해당 이슈는 이후에도 반복해서 나타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금리는 앞으로 오를 일만 남아있다. 단기자금시장의 내홍은 더 심각해질 수 있다는 의미다. 미국은 통화정책에 민감한 2년 만기 국채수익률이 전일보다 6.5bp 오른 2.706%를 나타냈다. 2008년 7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지난주말 발표된 고용지표 호전 등으로 사실상 연내 2회 인상을 기정사실로 했다. 가뜩이나 확대된 미국과 한국의 금리 역전 폭이 더 벌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도 더는 동결 기조를 고집할 수 없을 지경이 됐다.

10년 전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한 구조화 채권의 신용리스크도 결국은 단기자금시장에서 시작됐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높은 레버리지를 자랑하던 구조화 채권은 금리 상승기와 맞물려 RP 시장이 문을 닫고 단기자금 조달이 막히면서 양질의 자산까지 내던져야 하는 운명을 맞았다. 양질의 자산까지 매도해야 하는 패닉 양상은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고 결국 시스템 리스크로 이어졌다.

1일 단위로 조달과 운용이 이뤄지는 RP 시장은 자금경색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특히 자체 신용 없이 펀드를 운용하는 자산운용사는 자산매각 이외에 대응할 방법이 없다. 금융감독 당국 등은 10년 전 글로벌 금융위기가 구조화 펀드의 자산매각 가속화에 따른 평가 손실 확대에서 촉발됐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자산운용사의 RP레버리지펀드는 그동안 돈을 편하게 벌었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가는 곳마다 풍운을 몰고 다닌 단기자금 전문가가 시장에 복귀했다는 점도 변수가 될 수 있다. (취재부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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