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한국 주식 투자자들의 인식이 급변하고 있다. 국내 종목에 한정되지 않고 해외주식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 변화는 우리 주식시장의 판도에 큰 변화를 몰고 올 것으로 예상된다.

19일 예탁결제원 자료를 살펴보면, 올해 1월부터 9월14일까지 국내 투자자들의 해외주식 결제처리 금액은 242억달러(27조원)를 기록해 작년의 226억달러(25조원)를 뛰어넘었다. 해외주식 매수 금액은 129억달러(14조원)로 작년 120억달러(13조원) 기록을 갈아치웠다. 3~4년전부터 '해외주식 공부하기' 열풍이 불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투자의 대세로 자리 잡기 시작한 셈이다.

해외주식에 빠진 투자자들은 국적을 가리지 않고 우량한 종목이라면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미국의 대표적인 기술주인 아마존과 알파벳(구글의 모회사), 엔비디아는 이들의 단골 투자 종목이고, 일본의 닛폰 스틸과 네이버의 자회사인 라인, 골드윈도 최선호 투자 아이템이다. 중국의 항서제약, 홍콩 증시의 텐센트, 미국 증시에 상장한 중국 기업 알리바바도 한국 투자자들이 보유한 해외주식 톱텐(TOP 10) 종목에 포함돼 있다.

해외주식 투자자 중엔 거액을 아낌없이 투자하는 큰손도 있고, 월급을 쪼개 매월 주식을 사 모으는 개미 투자자들도 많다고 한다. 전문가 뺨치는 내공과 실력으로 무장한 '해외주식 빠꿈이'들이 늘어나면서 수준 높은 해외정보에 대한 니즈도 커지고 있다. 뛰어난 영어 실력으로 무장된 고급두뇌들은 구글에서 해외정보를 직접 찾아보고 판단해 투자하기도 한다.

국내 투자자들에겐 생소한 단어인 FANG과 MAGA 등의 단어들이 이들에겐 일상용어처럼 쓰인다. `페이스북·아마존·넷플릭스·구글'의 첫 글자를 모아 만든 FANG과 `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구글·애플'의 약어인 MAGA를 모르면 이제 바보 취급을 받는 세상이 됐다.

2013년쯤부터 본격적으로 해외주식 관련 정보를 소개하며 씨를 뿌린 국내 증권사들은 최근 들어 열매를 따기 시작했다. 특히 작년부터 시작된 국내 대세 상승장이 올해 초에 사실상 마무리된 가운데, 많은 투자수요가 해외주식으로 향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우리 증시와 달리 미국 증시는 사상 최고치를 계속 갈아치우며 승승장구하고 있고,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업들도 순항을 거듭하면서 투자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우리 증시는 이제 무한경쟁 시대를 맞아 미국과 일본, 홍콩 등 글로벌 증시에 상장된 종목과 경쟁해야 하는 시대를 맞은 것이다.

이는 마치 국내시장을 놓고 수입차와 힘겨운 싸움을 벌이는 한국 자동차산업을 연상케 한다. 국내 과자에 불만이 일자 수입 과자가 인기를 끌던 모습도 오버랩된다. 수입차와 수입 과자가 왜 우리나라에서 그토록 인기를 끌게 됐을까. 왜 번거로움을 감수하면서까지 국내 온라인 쇼핑몰을 외면하고 해외직구를 할까. 수입산의 품질과 가격이 만족스럽기도 하겠지만, 국내 제품의 질과 서비스에 국내 고객들이 실망한 것이 더 큰 이유일 것이다. 이러한 안일한 생각들이 쌓이고 쌓여 소비자의 외면을 받은 것이다.

해외주식의 인기 역시 같은 맥락에서 우리에게 따끔한 교훈을 준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과연 아마존과 알파벳에 버금가는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후진적인 기업지배구조와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지 않은 기업문화, 여전히 성에 차지 않는 주주환원 정책, 잊을 만하면 터지는 오너들의 갑질 사태를 생각하면 우리 기업들의 주가 상승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음을 절감하게 된다.

또한 국내에서 우량한 종목이라 하더라도 해외증시에 따라 들쭉날쭉 움직이는 코스피지수의 허약함으로 인해 기업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것도 아쉬운 점이다. 글로벌 무한 경쟁 시대에 경쟁력이 사라진 우리 증시가 살아남을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산업증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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