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최근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국회 인사청문회장에 나와 집 한 채를 마련하기 위해 '다걸기'(올인)를 했다고 밝혔다. 공직자다 보니 주식에 투자도 할 수 없어서 재산 증식을 위해 집 한 칸을 마련하는 데 집중할 수밖에 없었고 이 과정에서 1, 2금융 대출을 사용했다고 부연했다. 우리 국민 대부분이 집을 사는 과정과 별반 다르지 않다.

최 위원장이 사는 곳은 '잠실 엘스' 아파트다. 그는 2009년 이 아파트를 약 16억원에 매입하기 위해 약 9억원을 차입했다. 차입금은 아파트 전체 가격에 60%에 달한다.

잠실엘스는 잠실동(구주소)에 자리 잡고 있는 아파트로 저층 1단지를 재건축한 아파트다. 동네 주민들 사이에서 "엘스에 살고 있다"고 하면 목에 힘깨나 줄 수 있다고 한다. 평당 가격이 3천500만원 가량하는 고가 아파트니 말이다.

최 위원장은 잠실 엘스 아파트를 매입할 당시 차관보급에 해당하는 1급 공무원이었다. 연봉은 1억원 남짓이었을 것이다.

만일 최 위원장에게 현재 정부가 구상 중인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가 적용됐다면 그가 아파트를 매입한다고 어느 은행이든 9억원을 선뜻 대출해 주진 않았을 것이고, 최 위원장도 잠실 엘스아파트 입주는 꿈꿔보지 못했을지 모른다. DTI(총부채상환비율)도 정부는 서울 지역의 경우 60%에서 50%로 10%포인트 낮췄다.

내 집 마련은 서민의 꿈이다. 오랜 세월 그랬다. 전쟁 직후 우리 국민에게 소원은 통일이었듯, 가정을 꾸린 구성원의 꿈은 내 집 마련이었다. 어찌 보면 통일보다 내 집 마련이 우리 가장들에게는 더 큰 소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서민은 이제 대출을 일으켜 아파트 하나 장만하기 어려울 거 같다. 문재인 정부에서 금융당국은 가계부채 급증을 막아보겠다며 소득 증빙을 통해 갚을 수 있을 만큼만 대출을 받게 하겠다는 입장이다. 앞선 세대가 부동산 가격 상승의 과실을 따 먹고 남은 결과로 나타난 가계부채 문제 때문에 이제 집을 사야 하는 후세대는 각종 규제로 내 집 마련의 꿈이 더 멀어질 수 있다는 점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당장 가계부채 문제 해결도 중요하지만, 사회의 그림자를 최소화하는 것도 당국자가 신경 써야 할 부분이다.

지난해 이맘때쯤 베스트셀러 중 한 권을 꼽는다면 장아은의 장편소설 <잠실동 사람들>이 있다.

책에는 초등학교 2학년 같은 반 아이들을 둔 지환 엄마와 해성 엄마, 경훈 엄마, 태민 엄마가 등장한다. 대출을 꽉꽉 채워 무리해 잠실 아파트로 들어온 사람, 아이 교육을 위해 직장을 포기한 엄마들이 주인공이다. 아이들 교육비에 허리가 휘어가고, 또 아이들 때문에 자신의 미래를 포기하는 것이 옳은지 마냥 혼란스럽기만 한 우리 세대 부모들의 현주소를 그려 내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얻었다.

이 책 속에 주인공들이 사는 잠실 엘스, 현실에선 대한민국의 금융당국 수장이 살고 있다.

앞으로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그려 낼 대출규제 정책은 가계부채 문제뿐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의 꿈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엄청난 파급력을 가져올 것이다. 더욱 신중한 정책이 필요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번 가계부채 대책으로 나올 대출규제가 금융 건전성 확보뿐 아니라 주택가격 안정까지 가져와 대한민국 모든 국민이 행복해지는 결과를 낳기를 기대해 본다. (정책금융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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