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유럽연합(EU)이 올해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1~2차 세계대전으로 피폐해진 유럽 땅에 더 이상 전쟁이 벌어지지 않게 한 공로를 인정받았다고 한다. 노벨평화상이 인류평화에 기여한 사람이나 단체에 주는 것임을 생각하면 일리가 있다. 그러나 EU의 노벨상 수상에 대해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들도 많다. 현재 EU는 출범 이후 최대 위기에 처해있기 때문이다. 유럽통합이라는 명분으로 출발한 EU는 구조적 문제점을 노출하며 해체 위기에 놓여 있다.

뜬금없이 왜 지금 EU에 노벨상을 주느냐는 논란도 있다. EU가 올해 평화상을 받을 만한 드라마틱한 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EU 창설과정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은 1984년 11월이다. 헬무트 콜 당시 독일 총리는 프랑스 국립묘지를 찾아 2차대전 중 희생된 프랑스인을 추모하고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과 악수했다. 노벨평화상을 받기에는 이 장면이 더 어울린다. 독일과 프랑스의 화해는 EU 출범을 앞당기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1992년 2월 마스트리흐트 조약 체결도 기억에 남길 만한 순간이다. 유럽이 시장통합을 넘어 정치·경제통합체로 결합하는 선언을 했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논란에도 노벨위원회가 EU에 평화상을 수여한 것은 위기에 빠진 EU에 성원을 보내기 위해서일 것이다. 유럽집행위원회 대변인은 "노벨평화상이 (유럽통합을 위한) 우리의 인내심에 큰 동기부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U는 현재 '통합이냐 해체냐'를 놓고 기로에 서 있다. 경제적으로 부유한 북유럽과 재정부실로 누더기가 된 남유럽의 갈등은 점점 심해지고 있다. 경제위기에 빠진 그리스와 스페인에 강력한 긴축을 요구하는 독일. 독일의 가혹한 정책에 맞서 유화책을 주장하는 프랑스와 이탈리아. 게다가 27개 회원국에서는 저마다 다른 목소리가 나오고 이를 조율하는데에도 상당한 시일이 걸린다. EU의 생존을 위해 부실한 그리스를 쫓아내라는 주장이 나오는가 하면 독일이 떠나야 EU가 산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실 EU의 경제 불균형을 만드는 큰 요인 중 하나가 독일이다. 단일 통화 유로화는 독일에는 유리하지만 남유럽에는 불리한 경제구조를 만들어 냈다. 남유럽의 경제부실은 남유럽의 책임도 있지만 독일의 책임, 나아가 EU 경제의 구조적 결함도 있다는 얘기다. 독일의 경제 펀더멘털보다 값싼 유로화는 독일의 수출경쟁력을 높여주는데 독일 제품의 상당수가 남유럽으로 흘러들어 간다. 남유럽 국가들은 EU의 경제블록 안에서 값비싼 돈을 치르며 독일 제품을 사야 한다. 남유럽의 부가 독일로 흘러가면서 독일은 부유해졌지만 남유럽은 빈털터리가 됐다.

독일은 재정위기에 빠진 그리스에 구제금융의 상당 부분을 제공하지만 그리스는 이 돈의 대부분을 독일에 이자로 되갚아야 한다. 남유럽 위기를 거치면서 일종의 착취구조로 변해버린 셈이다. 스페인과 그리스 등 남유럽에서 과격 시위가 발생하고, 특히 독일에 대한 반감이 커지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다. 20%가 넘는 남유럽의 만성적인 고실업률. 경제위기와 함께 고질병이 된 청년실업. 가난한 남유럽을 떠나 부유한 북유럽을 찾아 밀려드는 이민자들. 일자리를 찾기 위해 EU로 들어오는 아랍.아프리카계 이민자와 인종갈등. EU의 미래엔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

이번 노벨평화상에는 어렵게 만든 EU를 해체하지 말고 중단없이 전진하라는 정치적 의미가 담겼다. 그러나 내용에서는 EU가 슬기롭게 대처해 경제를 구해내라는 경제적 의미가 더 크다. EU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정치와 외교는 잘했으니 이제 경제에 신경 쓰라는 메시지가 담긴 셈이다. EU가 원하는 정치통합이 순조롭게 되려면 경제에 잡음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노벨평화상을 받은 EU가 당장 집중할 일이 태산같이 많다. 스페인은 구제금융 신청을 두고 고민하고 있고 그리스는 구제금융 잔여분을 받으려면 개혁 조치를 검사받아야 한다. 이런 문제들이 오는 18일부터 열릴 EU 정상회의에서 다뤄진다. EU가 노벨상 수상에 걸맞은 결과물을 낼지 주목된다. (국제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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