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아내와 말싸움에서 대부분 지고 산다.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라는 노자(老子)의 말씀과, "세상에 못난 남자는 마누라와 아랫사람과 말씨름한다."라는 퇴계(退溪) 선생의 가르침을 되새기며 노력하는 탓이다.

하지만 집사람의 바가지를 항상 참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열 번에 한 번쯤은 반발해야 한다. 늘 가만히 있으면 죽은 가마때기로 알고 날이 갈수록 더 두들겨 댈 수 있으니 말이다.

지난 주말에 아내가 "좋아서 마시는 술 아니냐, 핑계 대지 마시라, 50살이 됐으면 철딱서니가 좀 생기셔야지."라는 지적에 나도 모르게 "여자들이 남자 속을 어찌 알겠는가. 하루만이라도 (잔소리하는) 여자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며 대들었다. 끝까지 못 참은 것을 잠시 후회하는 중에 집사람의 반격이 뜻밖에 우스꽝스러웠다. "여자가 없으면 당장 내일 아침 바지 다림질해줄 사람이 없을걸".

무슨 반응이 이래, 처음에는 말이 되지 않는 논리 구조라고 생각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여자가 없는 세상', 보통 일이 아니었다.

우스개 삼아 조금 비약을 해볼까. 우선 일차적으로 여성용품인 화장품, 향수, 보석, 액세서리, 의류, 패션 회사가 문을 닫아야 할 것이다. 당연히 백화점과 홈쇼핑 회사도 어려워질 것이다. 업종 대표 주가가 어떤 게 있나. 아모레퍼시픽[090430], LG생활건강[051900]을 위시하여 제일모직[001300], LG패션[093050], 신영와코루[005800], 현대백화점[069960], GS홈쇼핑[028150] 등의 미래 주가는 상상할 수가 없다.

남자들끼리만 살면 잘 보여야 할 대상이 없어지고, 힘과 능력을 과시할 필요도 없다. 애인과 마누라에게 잘난 체하고 싶은 욕망이 사라져 남자들은 경쟁심리가 퇴화하고 목표지상주의도 시들해질 것이다. 당연히 남성용품 회사도 문을 닫는다. 자동차, 주류, 면도기, 주먹만한 패션 손목시계 제작회사의 존립 기반이 무너진다.

인간의 이기적 욕망이 경제를 돌아가게 한다는 '보이지 않는 손'도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남자들은 더는 여자를 행복하게 해주려고 큰 주택을 사지도 않아도 된다. 빚을 내서 집을 사들이는 악순환도 없어진다. 미국의 서브프라임(비우량주택담보대출) 모기지 부실사태는 애초부터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당연히 욕망 경제, 부채(Debt) 경제의 사슬이 끊겨 글로벌 금융위기도 생기지 않는다.

보다 근본적으로 여성에게 잘 보여야 할 남자의 다양한 원초적 욕구가 식어 자본주의 자체가 태동하지 못했고 자본주의의 위기로 몸살을 앓는 일은 더더욱 없었을는지 모른다.

개인적으로도 여성이 없었다면 제조업과 이를 뒷받침하는 금융산업이 꽃을 피우지 못해, 여기에 신경망을 제공하는 회사인 연합인포맥스도 출범하지 못했을 것이다.

오호라, 여기에까지 생각이 이르니 '여자 없는 세상'을 운운한 것은 하룻밤 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간이 배 밖에 나온 실언이었다. 여성은 자본주의의 출발점이고 남자를 둘러싼 모든 것의 원초적 맹아(萌芽)였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다시 한번 세상의 여자들에게 감사해야 할 상황이었다.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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