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임하람 기자 = 중산층 아파트의 평(3.3㎡)당 가격은 1억 원을 훌쩍 넘어가고, 최고급 주거 지역의 신규 주택 시세는 영국 왕실의 사무실 버킹엄궁전보다 약 아홉 배 비쌀 것으로 추산된다.

세계에서 가장 거품이 심한 것으로 평가받는 홍콩의 부동산시장 얘기다.

그러나 최근 이 같은 홍콩의 부동산시장에서도 거품 붕괴 징조가 나타나고 있다.

홍콩의 주택가격을 추종하는 홍콩 주택가격지수는 지난 8월 29개월 만에 처음으로 하락했다.

이 지수는 지난 8월 전달대비 0.6포인트 하락한 393.9를 기록했다. 2016년 3월 이후 첫 하락이다.

홍콩시 정부의 부동산 안정화 정책, 무역전쟁,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상에 따른 대출비용 상승 등이 가격 하락 요인으로 꼽힌다.

캐리람 홍콩 행정장관은 이달 집값을 잡기 위해 대규모 인공섬을 조성해 주택공급을 하겠다는 구상을 발표했다.

홍콩에서 가장 큰 섬인 란타우섬 동쪽에 1천700헥타르(약 514만평) 규모의 인공섬을 조성해 총 40만 채에 달하는 주택을 공급하고, 향후 20~30년 후 완공해 110만여 명이 거주할 수 있는 주택을 조성한다는 구상이다.

72조 원에 달하는 예산이 인공섬 계획에 투입될 예정이다.
 

<란타우 인공섬 조성 계획, 출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정부 정책 발표 후 홍콩 주택 매매가가 떨어진 사례가 속속들이 나오고 있다.

일례로 호만틴 지역에 있는 44평형 아파트는 같은 지역이 평균 시세보다 30%가량 낮은 2천750만 홍콩달러(약 39억5천만 원)에 거래됐다.

홍콩 북부 상수이 지역의 31평형짜리 아파트는 955만 홍콩달러(약 13억6천만 원)에 거래됐다. 시세보다 20% 이상 낮은 수준이다.

중국과 홍콩의 경제가 무역전쟁으로 악화하고, 프라임 금리가 가파르게 오를 수 있다는 우려에 헐값 매물이 나오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거래량도 눈에 띄게 줄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이달 홍콩의 부동산업체 장사중국투자는 이달 열린 이틀 동안의 부동산 판매 행사에서 매물의 35%밖에 계약하지 못했다.

홍콩 중개업체인 센탈린은 지난 몇 주간 홍콩에서의 부동산 판매량이 감소세를 나타냈다고 말했다.

이달 25일 기준 매매에 성공한 신규 아파트는 단 800건으로, 이번 주말까지 매매가 예상되는 규모는 총 1천300건이다.

이달 거래 전망치 2천 건 대비 반 토막 수준이며, 9월 거래량인 1천997건에 비해서도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홍콩 부동산 업체 리카코프 프라퍼티스 켄 찬 디렉터는 "(주택) 소유자는 매물을 처분하기 위해 큰 폭의 할인을 제공했다"면서 "부동산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관망심리에 따라 주택가격이 하락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리카코프 데렉 찬 리서치 헤드도 "좋지 않은 시장 상황에서 부동산 개발사들이 가격을 올릴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대출비용 인상도 홍콩 부동산시장 둔화의 직접적 요인이다.

지난달 HSBC, 항셍은행, SC 등 홍콩의 주요 시중은행들은 12년 만에 프라임 금리를 인상했다.

프라임 금리는 최우량 고객 대출 금리를 의미하며, 하이보와 함께 취급되는 모기지금리의 또 다른 벤치마크다.

홍콩 금융관리국(HKMA)이 미국 연준의 금리 인상에 즉각 금리 인상으로 대응하자 은행권도 이에 발맞춰 금리를 상향 조정한 것이다.

하이보 금리도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연준의 금리 인상 단행 직후인 지난 9월 28일 홍콩달러 하이보 1일물 금리는 11년 만에 최고치, 1개월물 금리는 10년래 최고 수준으로 급등한 바 있다.

<최근 홍콩달러 하이보 1일물 추이>

전문가들은 향후 부동산시장도 둔화할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신디 황 S&P 애널리스트는 "그간 홍콩의 부동산 가격을 끌어올린 핵심 요소는 풍부한 유동성이었다"면서 "십 년간 계속된 초 완화적 통화정책 환경이 이제는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씨티은행, 노무라, UBS, CLSA 등 세계 주요 투자은행들은 홍콩 부동산시장이 임계점에 다다른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하고 있다.

홍콩의 주택가격이 약 10% 하락할 것이라는 전문가 관측도 있다.

리슈캄 홍콩수인대학 경제금융 교수는 "부동산시장의 자신감이 떨어지면, 집값은 더 추락할 것"이라며 홍콩 부동산 가격이 조정을 받을 경우 홍콩인들의 자산이 대폭 감소해 경기 침체가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홍콩 부동산시장 둔화는 일반적인 아파트뿐만 아니라 최고급 거주지역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영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스>에도 등장하는 홍콩의 최고급 거주지역인 '더 피크'의 정부 소유 매물이 매매에 실패한 사례도 최근 나왔다.

이 매물은 485억 홍콩달러(약 7조397억 원)에 거래될 것으로 예상되며 이목을 끌었지만, 결국 만족할 만한 수준의 입찰가를 제안받지 못해 매각에 실패했다.

SCMP는 사설을 통해 해당 매각 실패 건은 '새빨간' 홍콩의 부동산시장이 다소 '식혀지고' 있다는 신호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홍콩 최고급 주거 지역 빅토리아 피크에서의 전경, 출처: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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