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1~2년 더 일하고 평생 노느니 지금 퇴직해 재취업할 기회라도 살리는 게 훨씬 낫지 않습니까"

한 금융감독원 부서장의 자조 섞인 한탄이다.

올 연말 인사철을 앞두고 금감원이 벌써 뒤숭숭하다. 윤석헌 원장 취임 후 첫 조직개편 및 임원 인사인 만큼 국실장급과 팀장급 대대적 교체 및 임원 자리 축소 등 말이 나돌면서 일손이 잡히지 않는 게 사실이다.

복도에서 마주친 직원들끼리 주고받는 이른바 '복도 통신'에도 다양한 인사 시나리오가 나도는 등 일반 직원들까지도 인사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난해 최흥식 전 원장이 취임 두 달 만에 임원 전원을 교체하는 파격적 인사를 단행한 탓에 운신의 폭은 좁지만, 윤 원장이 소폭 교체를 통해 조직 분위기를 쇄신하고 조직 장악력을 높일 것이란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이 때문에 부원장보 승진 후보에 오른 국장급들은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이들의 고민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금감원 임원의 연봉과 퇴임 후 취업제한, 임기의 불안정성 등을 따져보면 그냥 국장으로 있다 퇴직하는 게 훨씬 낫기 때문이다.

2015년 강화된 공직자윤리법에 따르면 금감원 1급 직원은 퇴직 후 3년간 재취업이 불가능하고 취업제한 업무 범위도 소속부서에서 소속기관 전체로 확대됐다.

퇴직 후 곧바로 이동할 수 있는 기관이 사실상 없다 보니 어떻게든 파리 목숨을 연장하는 것이 금감원 임원들의 숙명이 되어버렸다.

다만, 2급 국·실장 퇴직하면 그나마 재취업의 기회는 있다.

공직자윤리법 제17조는 퇴직일로부터 3년간 퇴직 전 5년 동안 소속했던 부서 또는 기간의 업무와 밀접한 관련성이 있는 취업제한 기관에 취업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지난 5년간 맡았던 부서와 관련성이 없으면 금융기관에 취업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하은수 저축은행중앙회 전무이사가 대표적인 예다. 하 전무는 금감원에서 자본시장조사 부국장, 여신전문검사실장, 은행준법검사국장 등 저축은행과 관련이 없는 업무를 역임한 덕에 지난 7월 재취업에 성공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가기 힘든 직원도 있다.

퇴직 전 5년 동안 분쟁조정, 소비자보호, 서민금융 관련 부서에 근무했을 경우 대부분 금융기관과의 업무 관련성이 인정돼 사실상 재취업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국·실장은 물론 팀장급도 가장 꺼리는 부서가 됐다.

금감원 한 직원은 "요즘 같은 때 부원장보에서 부원장으로 승진하지 못하면 임기가 길어야 1~2년인데 굳이 승진하려고 기를 쓰지도 않는다"면서 "조직에 대한 사명감으로만 일하기도 힘든 시대이다 보니 승진 기피는 당연한 현상"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금감원에선 임원 승진보다 2급 퇴직 후 재취업에 성공한 이를 더 부러워하는 딜레마가 생겨버렸다"면서 "공직자윤리법 강화 취지는 알겠지만, 수년간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는데 현실적인 대안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금융시장팀 이현정 기자)

hjlee@yna.co.kr

(끝)
저작권자 ©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