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진정호 기자 =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최근 잇달아 맹공을 퍼붓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대응하기 위해 네 가지 행동 원칙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9일(현지시각)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들어 연준이 기준금리를 너무 빨리 올리는 바람에 경제성장세에 타격이 있다며 "연준이 미쳤다"거나 "파월 의장과는 정말로 행복하지 않다"고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WSJ은 "파월 의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공격에 정면으로 대응하지 않고 우회적인 방법으로 대응하고 있다"며 "이를 위해 네 가지 행동 원칙을 세웠다"고 전했다.

WSJ이 보는 파월 의장의 네 가지 원칙은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언급하지 말 것', ▲'도발 당해도 관여하지 말 것', ▲'백악관 외부에 우군을 만들 것', 그리고 ▲'경제에 대해서만 말하고 정치는 일절 건드리지 말 것' 등이다.

파월 의장은 첫 번째 원칙 때문에 때때로 어색한 침묵이나 불편한 웃음을 유도하기도 했다.

지난 10월 미국 보스턴에서 경제학자들과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파월 의장은 그가 모은 연준 인사들에 대해 열정적으로 얘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화제가 트럼프 대통령으로 옮겨가자 그는 갑자기 입을 닫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게 됐다고 그 자리에 참석한 관계자가 전했다.

이번 달 댈러스 연방준비은행(연은)이 주최한 행사에 참석했을 때에도 파월 의장은 원칙을 고수했다.

당시 로버트 카플란 댈러스 연은 총재가 좌중들 앞에서 "청중들이 궁금해하는 것 중 하나는 지난 몇 달 동안 정치 지도자들이 왜 나를 언급했느냐는 것일 것"이라고 말해 어색한 웃음을 낳았다.

이때에도 파월 의장은 "그건 매우 미묘한 거야, 롭"이라며 끼어들어 카플란 총재를 제지했다. 그러곤 "우리는 어떤 것도 조종하려 들지 않고 조종하지도 않는다"며 오로지 경제 문제에 대해서만 발언해 네 번째 원칙을 고수했다.

WSJ은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 때문에 파월 의장은 갈수록 정치가 시장에 개입하지 않는 정책을 수행하기가 어려워졌다"고 지적했다.

지난 28일 파월 의장이 "현재 기준금리는 폭넓은 범위의 중립금리 추정치 바로 밑에 있다"고 했을 때 일부 투자자는 연준이 금리를 더 올릴 여지가 많지 않다고 느꼈고 트럼프 대통령의 공격이 연준 인사들을 뒤흔들기 시작한 것 아니냐고 의심했다. 물론 파월 의장의 지금까지 행보는 그런 의심이 근거 없다는 점을 시사하며 그와 가까운 인사는 그런 인식을 강력하게 거부하고 있다.

파월 의장이 트럼프 대통령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마련한 또 다른 대응책은 백악관 외부에 조력자를 만드는 것이다. 그는 연준의 권위는 백악관보다 의회에 더 의존적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의회에서 아군을 만드는 데 힘쓰고 있다.

댈러스 연은이 주최한 행사에서 파월 의장은 "우리의 결정은 정부가 뒤집을 수 없다"며 "물론 의회는 자신들이 원하는 것은 뭐든지 할 수 있다"고 말했다.

WSJ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기술관료라는 연준의 '아우라'는 심각하게 훼손됐다며 월가 은행에 구제금융을 지원하는 것은 누구도 좋아하지 않아 의회는 연준의 긴급 대출 능력을 제한하게 됐다고 전했다.

일련의 사례에서 의회의 힘을 확인한 파월 의장은 지난 2월 취임 직후 백악관보다 의회와 친해지는 데 힘을 쏟기 시작했다. 지난 8개월간 그는 32명의 공화당 의원과 24명의 민주당 의원을 만났는데 이는 재닛 옐런 전 연준 의장이 첫 8개월 동안 만난 의원이 불과 13명이었다는 점과 대비된다.

지난 10월 파월 의장과 사적으로 만난 크리스 쿤스 미국 상원의원은 그가 백악관과의 갈등에 관해 얘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쿤스 의원과 제프 플레이크 상원의원은 이후 트럼프 대통령에게 연준을 건드려선 안 된다는 서신을 보냈다.

두 명의 상원의원은 서신에서 "당신은 연준에 금리에 대해 어떤 조처를 하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건설적이지 못하고 위험하다"고 강조했다.

jhj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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