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 긴장과 잠정 휴전

올 한해 글로벌 금융시장은 미중 무역 갈등과 협상 기대에 좌지우지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주요 2개국(G2) 간 '헤게모니 전쟁'으로까지 격화돼 점차 장기화되는 양상이다.

미국은 3월 1차 대중 관세부과 정책을 발표하면서 미중 무역갈등의 신호탄을 쐈다. 중국도 대미 관세부과 정책을 발표하면서 맞불을 놨고 이후 미국은 중국 기업의 대미 지적 재산권 침해와 관련해 세계무역기구(WTO)에 중국을 제소했고 중국도 미국의 WTO 규정 위반을 근거로 반발했다. 무역긴장은 1년간 꾸준히 고조돼 2차 관세부과 조치도 발표됐고 긴장이 장기화하자 경기 둔화 우려와 증시 부진 등 달러-원 환율 상승을 이끄는 주요 재료가 됐다. 9월 24일 미국이 2천억 달러 규모의 중국 수입품에 대한 10% 관세부과까지 발효됐다.

금융시장은 마침내 12월 1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이 정상회담을 갖고 추가 관세부과를 보류하는 휴전에 돌입하자 즉각 안도했다. 달러-원 환율은 하루만에 10원 이상 급락하기도 했다.

◇위안화 바라보는 원화

미국과 중국 간의 무역 분쟁이 환율 전쟁 우려로 이어지면서 원화와 위안화 상관관계가 유난히 높은 한해였다. 위안화에 비해 유동성이 풍부한 원화가 위안화의 '프록시(proxy)' 통화 역할을 하는 만큼 무역 분쟁에 따라 위안화가 요동칠 때마다 달러-원 환율은 더욱 예민하게 움직였다. 지난 1년간 달러-원 환율과 달러-위안(CNH) 환율의 상관계수는 0.9 수준을 웃돌면서 높은 상관관계를 나타냈다. 상관계수가 플러스(+) 1에 가까울수록 두 변수의 움직임이 같다는 의미임을 감안하면 한해 서울환시 참가자들은 거의 위안화를 보며 거래 방향을 가늠했다는 뜻이다.

특히 미국의 무역 압박에 중국이 환율을 무기로 대응할 것이라는 시장의 우려가 커지면서 달러당 위안화의 가치가 7위안 아래로 떨어지는 '포치(破七)' 진입 가능성이 더욱 커진 한해였다. 이에 따라 원화도 동반 약세를 보이기도 했다.

◇남북·북미 정상회담發 원화 강세

올해 새해가 밝자마자 서울환시에서 '컨트리 리스크'는 빠르게 사그라들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신년사에서 평창 동계올림픽에 대표단을 파견하겠다는 용의를 밝혔고 이후 4월에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판문점 남측 지역 평화의 집에서 만났다. 지난해만 하더라도 북한의 6차 핵실험 등으로 급격히 약세로 기울었던 원화 가치는 빠르게 상승했다.

정상회담이 있기 전 3월부터 대북 특별사절단이 회담 개최 장소와 일정을 발표하자 우리나라의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이 빠르게 하락했고, 역외 차액결제선물환(NDF) 시장에서 달러-원 1개월물은 10원 이상 급락하면서 원화 강세를 반영했다. 남북 간 화해 무드에 이어 6월 싱가포르에서는 첫 북미 정상회담까지 성사됐다. 이후 9월 3차 남북 정상회담까지 이어지면서 꾸준히 원화 강세 재료를 보탰다.

◇외환당국 시장 개입 내역 공개 결정

미국 정부와 국제통화기금(IMF)의 외환시장 투명성에 대한 요구가 강해지면서 한국은행과 기획재정부는 외환시장 개입 내역을 공개를 포함한 외환시장 선진화 방안을 확정해 발표했다. 미국 재무부가 매년 두 차례 환율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자국 통화의 인위적인 절하를 통해 경상수지 흑자를 보는 국가에 압박을 줬던 만큼 해당 조치는 향후 당국의 매수 개입 약화와 달러-원 하락 재료가 됐다.

5월 21일 발표된 '외환정책 투명성 제고 방안'에 따르면 외환 당국은 반기마다 외환시장에서 개입한 달러 순매수액을 공개하기로 했고 1년 동안 반기별 순매수액을 공개한 뒤 이후 분기별로 공개하기로 했다. 올해 하반기 외환시장 개입 내역은 내년 3월말에 처음 공개한다. 우리나라 외환 당국은 다만 외환시장 개입 내역 공개를 둘러싼 '환율 주권' 문제 제기에는 적극 방어했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또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는 전혀 별개라고 수차례 강조했고 "급격한 쏠림이 있을 때 시장 안정조치를 한다"는 기존 원칙에 변함없다고 말했다.

◇금융위기 이후 가장 낮은 변동성

올해 달러-원 환율 변동성은 역대급으로 낮았다. 연고점인 1,144.70원과 연저점 1054.00원 사이 변동폭은 약 91원에 그쳐 금융위기 이후 가장 낮은 변동성을 나타낸 한 해였다. 평균 한해 달러-원 환율의 변동폭이 150원 가량인 점을 감안할 때 상당히 좁은 범위 내에서 '붙박이 장세'를 나타낸 셈이다. 주목할 점은 미중 무역 분쟁을 비롯해 신흥국 자본 이탈 우려, 브렉시트 합의 불발 가능성 등 대외 역풍이 절대 약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내적으로도 남북·북미 정상회담으로 지정학적 리스크가 급격히 완화됐던 한 해였다.

이러한 변동성 약화는 원화가 전형적인 신흥국 통화들과 차별화되면서 준 안전자산으로 지위가 격상됐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서울환시의 체질 개선과 수급상 균형이 이뤄지면서 대외 변수에 보다 탄탄해진 셈이다. 경상수지 흑자로 전형적으로 공급이 우위인 시장이었으나, 국민연금이 환헤지 비율을 줄이고 해외투자가 늘어나면서 공급과 수요 쏠림도 크지 않았던 한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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