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서울채권시장에서 장기금리 하락세가 두드러지고 있다. 국고채 금리를 보면 사실상 1년 만기부터 50년 만기까지 차이가 없다. 실제로 지난 1년 동안 1년 만기 국고채 금리가 19.20bp 정도 떨어진 반면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58.60bp, 10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93.00bp 급락했다.





대다수 만기의 금리는 한국은행 기준금리인 연 1.75%를 하회했다. 1년 전 우상향하던 수익률곡선이 평탄화(플래트닝)됐으며, 장단기금리 역전현상도 현실화했다. 통상적으로 단기금리가 장기금리보다 높아지는 것은 현재 경제성장률이 미래 성장률보다 높을 것이란 전망이 강할 때 나타난다. 과거 글로벌 금융위기 때처럼 경제 상황을 비관적으로 볼 때 장단기금리차가 줄거나 역전현상이 일어난다. 장단기금리의 역전현상을 경기부진의 징후로 해석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그만큼 현시점에서 채권시장 투자자들이 한국경제를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는 방증이다.

물론 장단기금리차만으로 경기둔화를 예단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채권시장의 수익률곡선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에는 수급을 포함해 무수한 요인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은 물론 통계청도 장단기금리차를 3~6개월 이후의 경기 흐름을 가늠하는 경기선행지수를 구성하는 8가지 지표 중 하나로 삼는 것도 사실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1일 발표한 세계 경제전망을 통해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의 2.6%에서 2.4%로 하향 조정했다. 전망기관과 금융기관의 경제성장률 전망치 하향조정은 일상다반사가 됐다. 일부 외국계은행은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를 밑도는 1.8% 수준까지 낮췄다.

최근 전망기관들의 경제성장률 하향조정과 함께 나타나고 있는 장단기금리 역전현상은 한국경제를 위기국면에서 구해달라는 'SOS'인 셈이다. 안팎의 사정을 살펴보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갈등이 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이란 위기가 고조되는 등 세계 경제가 한 치 앞을 전망하기 어렵다. OECD는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2%로 낮추면서 보호무역주의 심화를 중요한 리스크로 꼽았다. OECD는 세계 교역증가율을 작년 11월 3.7%로 예상했다가 이번에 2.1%에 낮췄다.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의 입장에서는 글로벌 교역증가율 둔화는 치명타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정작 민생경제를 책임져야 하는 국회는 파행을 거듭하고 있다. 한국경제가 보내고 있는 'SOS'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근본적으로 한국경제가 풀어야 하는 사회구조 변화와 산업구조 재편 등의 숙제를 고민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국회로 넘어온 추가경정예산을 조속히 처리해 민간부문의 위축된 경제활동을 재정을 통해 보완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부채비율 40% 수준을 두고 40% 이상이면 재정위기가 발생할 수 있는 만큼 40%를 마지노선으로 그 아래에서 관리해야 한다는 논쟁은 한낱 소모적인 싸움에 불과하다. 어떤 기준을 놓고 보더라도 한국의 재정여건은 세계 어떤 나라보다 훌륭하다는 것은 자타가 인정하는 사실이다. 올해 추경 규모를 놓고 정부가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대응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경제에 이상징후가 감지되면 해외기관들부터 재정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문이 쏟아지는 것도 이런 이유다.

확장적인 재정정책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 정작 40% 수준에 바짝 다가선 국가부채비율을 40% 밑에서 관리해야 한다는 궤변으로 서로 다투기보다는, 먼저 경제 위기에 대응하고 중장기적으로 국민들이 용인할 수 있는 조세부담률 수준을 정하고 저출산과 고령화와 같은 재정위험요인에 대응하며 재정 건전성을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때다.

오히려 서울채권시장 일부에서는 정부가 빚을 내는 것을, 즉 국고채를 발행하는 것을 지나치게 금기시하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정부가 재원조달 수단으로 적자 국채를 악용해서는 안 되겠지만, 국내 자본시장의 발달과 함께 장기채권에 대한 시장 수요가 급증한 상황에서 정작 장기채권의 공급 부족이 장기금리 급락과 수익률곡선 왜곡을 심화시키고 있다는 평가다. (정책금융부장 황병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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