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하눌타리라는 식물이 있다. 박과의 여러해살이 식물로, 특히 담(痰)을 없애는 데 효과가 있다고 한다. 어떤 사람이 하눌타리를 얻었으나 어디에 쓰는지 모르고 그냥 벽에 걸어두고만 있었다. 어느 날 그 집에 들른 사람이 벽에 걸린 하눌타리를 보고는 "당신은 담을 앓으면서 왜 하눌타리를 걸어만 두고 쓰지 않느냐"고 물었다. 이에 집주인은 "이것이 담을 치료하는데 쓰는 물건이란 말이냐"면서 오히려 반문했다고 한다.

이처럼 아무리 좋은 물건을 가지고 있어도 필요한 때 쓰지 않고 쌓아두기만 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뜻으로 '언제 쓰자는 하눌타리냐'는 속담이 생겨났다고 한다. 최근 국내에서 추가경정예산(추경) 집행을 비롯한 재정정책을 놓고 펼쳐지는 공방을 보고 있노라면 이런 속담이 떠오른다.

최근 한국 경제를 둘러싸고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지난 1분기 경제성장률이 수년 만에 전년 동기대비 마이너스(-)를 기록했고, 일자리도 제대로 늘어나지 않고 있다. 그동안 한국 경제에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했던 반도체를 비롯한 제조업이 흔들리면서 수출은 6개월째 마이너스 증가율을 기록했다. 급기야 4월 경상수지마저 2012년 4월 이후 7년 만에 처음으로 적자를 나타냈다. 국내외에서 악재가 이어지면서 한국 경제가 활력을 잃고 이른바 무기력증에 빠진 셈이다.

여야 정치권은 물론 청와대도 한국의 경기가 하강국면을 보인다는 데 동의한다. 윤종원 청와대 경제수석도 지난 주말 기자간담회에서 "경기가 하강국면에서 바닥을 다지고 있다. 경기적인 부분과 구조적인 부분이 결부되면서 통상적인 것보다는 경기하강의 기간이 길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확장적인 재정정책을 통해 민간의 위축된 경제활동을 보완할 수 있는 정부의 정책 역할이 절실한 상황이다.

더욱이 한국의 재정 건전성은 다른 나라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다. 한국의 경우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40%를 밑돈다. 선진국으로 통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평균은 113% 정도다. 일본은 220%를 넘고, 미국도 100%를 훌쩍 웃돈다.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자랑할 만한 재정 여력을 보유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을 비롯한 각종 국제기구가 성장과 일자리를 뒷받침하기 위해서 중기적으로 확장적인 재정정책을 유지해야 한다고 권고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지난 1970년대 재정이 경제개발의 중추 역할을 했던 것처럼, 이제 한국이 경제위기를 탈출할 수 있도록 재정이라는 '용검(龍劍)'을 활용하라고 주문하고 있다.

재정집행 확대를 반대하는 쪽에서는 다음 세대에 부담으로 작용할 '국가부채'를 늘리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나아가 섣부른 추경 집행이나 재정확대를 정부의 경제정책 실패를 덮으려는 시도로 본다. 경제가 어렵다는 것을 주장하면서 정작 이를 개선하려는 재정정책에는 반대하는 꼴이다. 일부에서는 법적으로 국가채무비율을 GDP의 40% 이하로 묶어둬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는 한국 경제가 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대로 방치하자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해외에서도 인정하고 부러워하는 한국의 재정 건전성은 필요할 때 제대로 활용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가 되는 것처럼 재정 여력을 활용해 조금이라도 경제가 되살아나도록 해야 한다.

경제라는 게 희한하게도 한번 위축되면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저성장이 완전히 고착되기 전에 추경을 통해 성장 모멘텀을 자극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국가채무 자체를 줄이는 노력도 필요하나, 지금은 추경 등 가용한 정책수단을 십분 활용해 GDP를 늘릴 수 있는 기반을 만들고 궁극적으로 경제 규모를 키워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을 관리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게 더욱 시급해 보인다. (정책금융부장 황병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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